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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담긴 민어 요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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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28면

민어 빠베. 맛깔스럽게 구워진 민어와 멸치액젓으로 만든 소스가 감칠맛 덩어리다. 다른 재료와의 조화도 훌륭하다.

“도대체 왜?” 오래도록 해오던 마케팅 리서치 회사를 정리하고 여행사를 시작했을 때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물어봤다. 이 짧은 질문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잘 나가던 리서치 업을 그만 두는 이유가 뭔데?” “하필 그 힘들다는 여행사를?” “당신 나이가 몇 살인데?” 기타 등등. 이런 반응이 당연할 만큼 마케팅 리서치와 여행업은 그 간격이 멀었다.


나름대로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어차피 설명을 한다고 해도 남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대로 판단하게 마련이다. “이제는 그냥 재미있게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려고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얼버무렸다. 이른바 ‘모범 답안’이다. “더 늦기 전에 가슴 뛰는 일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서요”라는 말은 그냥 가슴에 묻어 두고.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한 셰프를 만났다. 완전히 다른 일을 하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요리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명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가서 로스쿨(Law School)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까지 갖췄던 이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미국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다가 자신이 진짜로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요리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곤 했던 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프렙(Prep)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2길 2 전화 02-332-2334 좌석이 많지 않아 미리 예약을 하는 편이 좋다. 서울미술관 바로 앞에 있어서 나들이 삼아 가기에 좋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점심, 저녁 모두 코스 요리도 있고 단품도 판매한다. ?민어 빠베? 2만8000원. 셰프 코스요리(점심) 3만3000원 (저녁) 7만원.

일단 요리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꼬르동 블루’라고 하는 프랑스 요리 학교의 한국 분교였다. 1년 동안 하루 8시간씩의 힘든 요리 수업을 받으면서도 매 순간이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다. 이 길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주저 없이 요리사로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부암동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프렙(Prep)’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라(36) 오너셰프의 이야기다.


1년 정도 요리사로 경험을 쌓은 다음에 학교 동문과 함께 동업으로 2014년에 개업한 곳이 이곳이다. 현재는 본인이 전체를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식 프렌치’라는 컨셉트로 한국적 특성을 가미한 프렌치 요리를 특징으로 한다. 무겁고 기름진 맛 보다는 담백하고 슴슴한 맛을 중심으로 하고, 우리나라 식재료만이 낼 수 있는 고유의 맛을 이용한 것이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 내가 주목한 맛이 바로 그것이었다. ‘민어 빠베’라는 생선요리를 시켰는데 프렌치 요리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이 독특했다. 민어살을 스테이크 모양으로 잘라서 ‘프왈레(Poeler·버터를 이용해서 팬에 굽는 것)’로 굽고, 멸치액젓을 이용한 소스에 감자와 방앗잎을 갈아서 만든 걸쭉한 퓌레(Puree), 그리고 토마토와 완두콩을 곁들인 요리다. 담백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나는 민어가 맛깔스럽게 구워져서 식욕을 당기고, 짭짤하면서도 감칠 맛 풍부한 소스가 고소하고 부드러운 퓌레와 훌륭하게 어우러졌다. 토마토의 상큼한 맛이 경쾌함을 더했다.


우리나라에서 생선 요리를 수준 높게 잘 하는 곳은 흔하지 않다. 셰프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져서 일부러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게 되면서 이 셰프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면서 놀랐다. 명문대 출신 미국 변호사이면서도 이렇게 용감한 선택을 했다는 것에 먼저 놀랐고, 요리 경력이 길지 않은데도 독특하고 수준 높은 요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또 놀랐다.


미국 변호사 출신의 미녀 셰프라는 조건은 미디어에서 ‘소비’하기 좋은 귀한 ‘아이템’이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방송국에서 출연 제안이 왔다. 남들 같으면 덥석 받을 만도 한데 이 셰프는 거절했다. 자신의 출신 배경보다는 요리 실력으로 먼저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어렵게 선택한 길인데 긴 호흡으로 진정성 있게 노력해서 요리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그렇게 짧은 경력으로도 손님들을 감탄시키는 수준 높은 요리를 만들어낸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셰프가 요리사가 되기로 한 것은 성공하기 위한 것도,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했다. 변호사, 법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용감한 발걸음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로서 박수를 보낸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다. ●


주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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