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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몸 좋은 오빠 찾아” “야경 보며 한 잔” 해운대는 밤이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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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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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하면 바다가 떠오르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여름 바다의 대명사로 해운대를 꼽습니다. 방송은 매년 휴가철이나 여름 주말에 “해운대에 몇 십만의 인파가 몰렸다”고 보도하고요. 해운대를 얘기하는 데 세대가 따로 있겠습니까만, 특히 청춘들은 여름 해운대에 열광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해운대로 이끌까요. 해운대만의 무언가가 정말 있는 걸까요. 청춘리포트팀이 여름밤의 해운대를 찾아 물었습니다. 권호 청춘리포트팀장

우리나라엔 해수욕장이 참 많다. 모두 254개로, 3면이 바다니 그럴 만하다. 해수욕장도 유행을 탄다. 어떨 땐 물 맑은 동해가 뜨고, 또 어떤 때는 각종 축제로 시끌벅적한 서해가 각광받는다. 그러나 유행을 초월한 곳이 있다. 해수욕장의 대명사 해운대다. 해운대는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바다다. 올해도 4일까지 680만 명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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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는 해수욕장을 넘어선, 하나의 여름 문화다. 해운대 개장 시기(6~9월)엔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온 버스커(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맥주병을 들고 그 주위에 삼삼오오 모인 관객들, 화려한 수영복을 입고 태닝 하는 여성들, 일행을 번쩍 들어 물에 집어 던지는 남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우뚝 선 고층 빌딩 곳곳의 주점들도 젊음으로 흥성거린다. 그래서 해운대는 청춘의 해변이다.

“물 좋다고 왔는데 바다만 예쁘네”
헛물 켜는 한여름 밤의 로맨스족
바다와 고층빌딩 숲 이국적 느낌
“SNS에 남겨야죠” 셀카족도 가득
새벽 3시에도 해변선 버스킹 한창
“대한민국에 이런 곳 어딨겠어요”

지난 3일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해운대를 거닐며 청춘을 만나 물었다. 왜 해운대를 선택했느냐고. 사실 “부산 하면 해운대니까”(공영민·21)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그래도 조금 자세히 들여다봤다. 핵심은 이랬다. “해운대는 짧은 여름, 청춘에게 허락된 복합문화공간이다.”

◆“‘까대기’는 가볍고. 여름밤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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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기자인지 아닌지 여기 손부터 넣어봐요.”

3일 오후 9시 아이스박스와 과자 봉지를 쌓아둔 채 돗자리를 펴던 청년 3명에게 갔다. 아이스박스 안에 얼음을 쏟아붓던 최준영(27)씨는 “인터뷰를 해도 되겠느냐”는 기자에게 대뜸 거짓말탐지기를 내밀었다.

“1만5000원 주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샀어요. 해운대는 ‘까대기’(이성과의 즉석 만남을 뜻하는 은어), 아니 로맨스 천국이잖아요. 설마 남자 세 명이 수영시합 하자고 해운대에 왔겠어요? 올 땐 얘들이랑 왔어도 갈 땐 여자친구 손 잡고 갈 겁니다. 이 거짓말탐지기는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킹용이에요. 어때요? 기자분도 지금 긴장 풀리고 웃음 나왔죠?”

부인하지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박정현(28)씨가 말했다. “여기에 까대기를 노리는 팀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희 음식이 좀 남아서…’ 정도로는 차별화가 안돼요.”

해운대에서 입수(入水)는 오후 6시까지만 가능하다. 수영복 차림이던 청춘 남녀는 이때가 지나면 숙소에서 갈아입은 깔끔한 평상복 차림으로 해변에 자리 잡는다. 여행지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한여름 밤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자들만 이런 로맨스를 꿈꾸진 않는다. 방학을 맞아 이곳을 찾은 백승주(20·여)씨는 “집이 속초라 바다라면 지겨워요. 해운대는 바다라서 왔다기보다 음… 몸 좋은 오빠들이 많다는 명성이 크잖아요.(웃음) 여행지에서의 낭만적인 ‘썸씽’을 한번 기대해보려고요.”

물론 뜻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동성 친구끼리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오병도(21)씨에게 다가갔다. 그는 힘없이 말했다. “해운대 하면 헌팅의 메카 아닌가요. 먼저 갔다온 형들이 해운대 ‘물’이 가장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 차재한(21)씨가 끼어들었다. “지금까지는 바다가 가장 예쁘네요…. 울적하지만 더 기다려볼 거예요.”

◆"홍콩·싱가포르 온 것 같은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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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기 직전인 오후 8시쯤 해변 한가운데엔 스마트폰을 끼운 삼각대가 서 있었다. 이정선(20·여)씨는 그 앞에서 팔을 활짝 폈다 접고, 검지를 입에 대보이며 발칙한 포즈를 아무렇지 않게 선보이고 있었다. “여행을 오면 ‘나 이렇게 느낌 좋은 곳에 와 있다’는 흔적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남겨줘야 해요. 우리한테는 그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는 인근 송정해수욕장을 갈까 하다가 해운대에 왔다. “바다랑 고층 빌딩이 같이 있는 해운대는 뭐랄까,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온 것처럼 이국적인 느낌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캄캄한 밤이었지만 이은혜(27·여)씨는 미러렌즈 선글라스를 쓴 채 셀카봉을 이리저리 돌리며 기념 사진을 남기느라 바빴다.

“해운대 하면 바다만큼이나 빌딩 숲, 야경 같은 게 떠올라요. 해변 주위에 가득한 횟집이나 조개구이집에서 불콰해진 얼굴로 소주를 마시고 있는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달라요.(웃음) 해운대는 쭉쭉 뻗은 빌딩들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고, 휘황찬란한 야경 뒤로는 외국계 펍(Pub)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해요. 실제로 여기 있으니까 굉장히 들떠요. 이제 요즘 해운대 야경 보면서 맥주 마실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유명해진 더베이101에 가보려고요.”

◆“새벽까지 음악과 술 … 잠들지 않는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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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저녁 부산 해운대 해변에서 관객들이 인디밴드의 즉석 공연을 보고 있다. [사진 김나한 기자]

4일 오전 1시쯤 해운대 해변은 하나의 야외공연장이 됐다. 기타 케이스를 발치에 펼쳐 놓은 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소규모 밴드가 속속 모여들었다. 팝송부터 국내 인디밴드의 카피곡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취향에 맞는 밴드 앞에 가 모여 앉은 사람들은 특정 구간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이 사이에 있던 권지현(21·여)씨에게 왜 해운대에 왔는지 묻자 당연하단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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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놀고 싶으니까요. 해운대는 밤낮이 없는 해변이잖아요. 다른 해수욕장에도 이런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해운대에 오면 이렇게 맥주 한잔 마시면서 밤새 버스킹을 보고, 물에 발 좀 담갔다가 다시 펍에 가서 맥주 한잔 하고, 또다시 새벽 3시에 돌아와도 버스킹을 하고 있어요. 이런 곳이 어디에 있겠어요.”

옆에 있던 최수민(20·여)씨도 거들었다. “해운대는 어떤 의미로는 입수 시간이 끝나고 나서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까지는 다른 해수욕장들과 같지만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청춘들을 확 끌어들여요. 아주 독보적이죠.”

부산=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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