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은 실권 없는 대통령이 된다|집권 사회당 패배로 끝난 프랑스 총선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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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6일 실시된 프랑스 총선은 예상대로 우파 야당이 승리함으로써 프랑스는 1958년 「드골」 장군이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뒤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에 우파 내각」이 공존하는 정치 체제를 맞게 됐다.
이번 총선은 집권 5년 사회당 정부의 존속 여부를 가름하고 사회당에 대한 신임 투표라는 데서 그 어느 선거 때보다도 열기가 높아 투표율도 지난 81년 총선 때의 58.3%보다 훨씬 높은 76.3%를 보였다.
58년 이후 처음으로 하원 의원을 비례 대표제 선출 방식으로 뽑은 이번 선거는 비록 이제까지의 여론 조사 결과처럼 우파 야당에 압승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지만 공화국 연합 (RPR)-프랑스 민주 연합 (UDF) 공동 전선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프랑스는 제5공화국 28년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이변은 집권 사회당의 패배 외에 극우파인 국민 전선 (FN)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의석을 얻어 의회에 처음 진출한다는 점과 공산당이 50년만에 처음으로 10%미만을 득표, 최악의 열세를 보인 것이다.
집권 초기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기간 산업의 국유화 등 각종 개혁 정책이 시행 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사회당 정권은 어쩔 수 없이 경제 정책을 우선회시키는 등 실추된 인기를 만회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했으나 결국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사회당이 집권한 81년 이전 10년간 연평균 2.7%의 성장률을 보였던 경제는 지난 5년간 1.1%의 저 성장에 머물렀으며 재정 적자는 81년 4백80억 프랑 (약 5조7천억원)에서 85년 1천4백96억 프랑 (약 18조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야당인 우파의 주요 공격 대상도 사회당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였다. 야당은 특히 사회당 정부의 국유화 정책이 프랑스 산업의 활기를 빼앗아 갔으며 경제 침체를 가져와 기업의 각종 부담 증가로 도산 기업이 늘어났다고 비판해왔다.
지난 1월16일 RPR의 「시라크」 당수와 UDF의 「르카뉘에」 의장이 공동 발표한 RPR-UDF 공동 강령은 우파 집권 후 경제 정책의 대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이 공동 강령은 이번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할 경우 사회당 정부에 의해 국유화된 기간 산업·은행·보험 회사를 즉각 민영화하고 고용 확대를 위해 조세를 경감하는 등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좌파 대통령과 우파 내각의 「동거」 정치가 갖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사회당과 우파 내각의 행동 방침이 달라졌을 때 이를 조정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다가 끝내 파국을 맞을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수상을 정부 수반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수상의 임무가 서로 중복되도록 정한 부분이 많은 특징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을 갖고 있고 비상시 긴급 조치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수상 또한 국방에 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따라서 리비아의 「카다피」가 차드에 무력 개입 할 경우 대통령과 수상 중 누가 군대 파견을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당장 대두하게 된다.
게다가 국방·외교를 제외하면 경제 정책 등 내정 면에서는 대통령에게 실권이 없어 이 문제에 관한 한 「미테랑」은 「무능」한 대통령 노릇을 해야할 형편이다.
이러한 파행정국을 피하기 위해 야당 일각에서는 우파가 승리할 경우 「미테랑」 대통령이 임기전이라도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할 것을 주장했으나 「미테랑」 대통령은 좌파가 패배하더라도 결코 사임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물론 「미테랑」 대통령은 총선 후 1년이 지나면 우파가 장악한 하원을 해산시키고 재선거를 실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재선거에서 좌파가 또다시 패배하면 정치도의상 「미테랑」 대통령은 사임할 수밖에 없다. 잔여 임기까지 사임하지 않고 그 동안 떨어진 사회당의 인기를 만회해놓고 그만두겠다는 「미테랑」으로서는 이런 위험 부담을 무릅쓸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우파 내각을 이끌 수상 후보에 집중되고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우파 연합이 압승할 경우에는 RPR의 「시라크」 당수를 수상에 임명하지만, 근소한 승리를 거둘 경우 보다 온건한 인물을 수상으로 선택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이 경우 UDF의 「르카뉘에」의장, 「샤방-델마스」전 수상, 유럽 의회 의장을 지낸 「시몬·베유」여사, 그리고 「지스카르·데스탱」전 대통령도 후보로 꼽힌다.
이들 중 누가 수상이 되더라도 「미테랑」 대통령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좌파 대통령과 우파 수상 정부가 공존하기란 구조상 쉬운 일이 아니다. 좌파 대통령과 우파 정부는 88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줄다리기를 계속, 프랑스 정국은 그때까지 난기류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정봉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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