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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키히토 조기 퇴임이 동북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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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키히토(明仁·82) 일왕이 8일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고 조기 퇴위하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일왕을 “일본국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한 평화헌법 1조에 따라 아키히토 일왕은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평화주의자이자 친한파인 그의 생전 퇴위는 일본 국내에는 물론 동북아시아 정세에도 여러모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키히토 일왕은 기회 있을 때마다 평화를 언급하고 한국에 친근감을 보여왔다. 1990년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에 귀 국민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발언해 침략 역사의 가해 주체가 일본임을 명시했다. 2001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선 우익의 압력에도 “1300년 전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었다”며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의 사이판 방문 때는 한국인 위령탑을 찾았다.

 특히 패전 70주년인 2015년 1월에는 “만주사변에서 시작된 이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워 향후 일본의 모습을 전망하는 것이 지금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침략사를 미화하려는 역사수정주의 세력을 향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과거 반성과 미래 설계의 재료로 삼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에서 아베 신조 총리 등의 우경화를 견제하는 ‘백제계 평화주의자 일왕’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친 말과 행동이 바탕이 됐다.

 문제는 일본 우익이 전쟁 금지를 명시한 헌법 9조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평화헌법을 수정하면서 일왕의 위상도 상징적 존재에서 ‘일본의 국가원수’로 바꾸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왕에게 새로운 정치성을 부여하려는 이런 움직임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주변국들을 자극해 동북아에 새로운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선 평화주의자인 아키히토 일왕의 퇴임 의사가 이런 개헌 움직임에 제동을 걸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가 아키히토 일왕의 조기 퇴임이 동북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