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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삼바 배드민턴 아이들, 마약 버리고 라켓 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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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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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삼바 리듬에 맞춰 배드민턴 연습을 한다. [사진=닛산, 볼트 SNS]

“총과 마약을 들었던 이 동네 아이들의 손에 지금은 배드민턴 라켓이 들려 있잖아요. 삼바와 배드민턴을 통해 아이들은 희망을 손에 쥐었습니다.”

브라질 빈민촌 ‘파벨라’의 기적
음식 찌꺼기 먹고 자란 체육교사
흥겨운 리듬에 배드민턴 동작 녹여
거리 아이들 밤마다 무료 교실 몰려
올림픽 국가대표 2명 모두 배출

세바스티안 올리베이라(51) 감독이 삼바 음악을 틀자 체육관에 있던 아이들 70여 명은 리듬에 맞춰 경쾌한 스텝을 밟았다. 브라질 전통 음악인 삼바와 배드민턴을 접목해 브라질 역사상 첫 자력 올림픽 출전 선수를 길러낸 배드민턴 아카데미 미라투스 센터의 강습 시간 풍경이다.

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서부의 작은 파벨라(Favela·빈민촌) 프라사 세카(Praça Seca). 마을 초입부터 이어지는 비탈길을 차로 10분 정도 오르니 하늘색 페인트가 바랜 2층 건물이 나타났다. 4개의 실내 코트에선 아이들이 짝을 지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브라질이 낳고 삼바가 키운 브라질 최고의 배드민턴 학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입구에서 기자를 맞은 올리베이라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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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촌 프라사 세카의 아이들은 올리베이라 감독이 세운 미라투스 센터에서 배드민턴을 통해 새로운 꿈을 키웠다. 올리베이라 감독의 아들 이고르는 이곳에서 배드민턴을 배워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사진=닛산, 볼트 SNS]

이곳은 리우 올림픽에 나서는 2명의 브라질 배드민턴 국가대표를 모두 배출했다. 특히 남자 단식에 나서는 이고르 코엘류 올리베이라(19)는 브라질 배드민턴 사상 처음으로 와일드카드(초청선수)가 아닌 랭킹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고르는 올리베이라 감독의 아들이다. 여자 대표 로하이니 비센테(20) 역시 12세 때부터 16세까지 이고르와 함께 운동한 미라투스 센터 출신이다.

올리베이라 감독은 유년 시절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며 음식 찌꺼기를 먹고 살았다. 친구들이 폭력과 마약에 찌들어 있을 때 올리베이라는 빈민가 아이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프라사 세카 공립학교 체육교사가 된 그는 1998년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수영 아카데미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드민턴 라켓 하나가 건물의 용도를 바꿨다. “하루는 동료 교사가 그물 달린 요상한 물건을 보여줬어요. 배드민턴 라켓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배드 뭐라고요?(Bad What?)’라고 되물었어요. 배드민턴이란 단어조차도 몰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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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은 그는 그날부터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작은 셔틀콕의 매력은 아주 강렬했다. “배드민턴은 신비로운 스포츠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하나로 묶는 데는 배드민턴처럼 좋은 게 없습니다.” 그는 푸른 바다를 상징하는 하늘색 외관은 그대로 두고 실내엔 풀장 대신 배드민턴 코트를 깔았다.

문제는 지도 방식이었다. 정식으로 배드민턴을 배운 적 없는 그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무리였다.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정석으로 못 가르칠 바엔 재미있게 가르치자고요.” 올리베이라 감독은 브라질인 모두가 즐기는 삼바를 떠올렸다. 신나는 리듬에 몸을 흔들고 스텝을 밟는 삼바가 부드러운 움직임이 중요한 배드민턴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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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육상 100m 3연패에 도전하는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는 지난 2014년 빈민촌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번개 세리머니를 펼쳤다. [사진=닛산, 볼트 SNS]

삼바 음악의 빠르기에 따라 코스를 3단계로 나누고 가장 빠른 리듬엔 스매시, 중간 빠르기엔 리시브, 느린 음악엔 서브 및 하이클리어 동작을 녹였다. 삼바와 배드민턴의 궁합은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 저녁 6시30분부터 50분간 울려 퍼지는 삼바 음악에 끌린 아이들이 하나둘 미라투스 센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삼바 리듬은 최고의 배드민턴 선수를 길러냈다. 미라투스 센터 출신 선수들은 2006년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무려 메달 68개(금 22개)를 쓸어담았다. 아버지 올리베이라 감독을 따라 3세 때부터 라켓을 잡은 이고르는 “삼바 덕분에 몸이 유연해졌다. 배드민턴 할 때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다. 삼바에 익숙한 브라질인들에겐 최적의 배드민턴 훈련법”이라고 했다.

올리베이라 감독은 “제 아들 이고르가 리우 올림픽에 나가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메달은 바라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고르를 보며 꿈을 키울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흥행 감독 카티아 런드(50)는 미라투스 아카데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올림픽 개막에 맞춰 브라질 전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리우=피주영·김원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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