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젊어진 수요일] 잠든 내 모습이 휴대폰에 녹화 “자니? 가자” 웬 여자 음성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기사 이미지

더우시죠?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라고들 하지만 이번 여름은 유독 더운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에어컨 바람 못지않게 각광받는 게 공포물입니다. ‘설마 진짜겠어?’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웁니다. 그때만큼은 더위 따윈 잊으니까요. 중앙일보 청춘리포트팀이 1일 저녁 공포 웹툰 작가와 소설가, 공포 블로그 운영자, 구호단체 직원, 헤비메탈 밴드 보컬 등 무서운 얘기 좀 한다는 5명을 만났습니다. ‘모여서 무서운 얘기나 하자’는 취지였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들이 들려준 얘기를 대담 형식으로 엮었습니다. 권호 청춘리포트팀장

#매일 밤 찾아오는 너. 누구니?

기사 이미지

크로커다일(33)
밴드 ‘피해의식’ 보컬, 자유육식연맹 총재
자칭 ‘프로 유체이탈러’
추천 영화 : 텍사스전기톱연쇄살인사건 시리즈
한줄평 :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

크로커다일(33·밴드 보컬, 이하 크)=“사실 다른 자리에서는 제 이야길 잘 안 해요. 다들 미친 사람 취급해서…. 여긴 괜찮겠죠?(웃음) 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위에 눌렸어요. 매일요. 가위에 눌리면 늘 파란 얼굴의 남자가 보였어요. 그 남자 얼굴이 제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데, 이상하게 목소리는 귀 바로 옆에서 들려요. 낮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하루는 가위에서 깨려고 몸을 벌떡 일으켰어요. 그런데 몸이 너무 가벼운 거예요. 이상해서 뒤를 돌아봤는데 누워 있는 제 모습이 보였어요. 소위 ‘유체이탈’을 한 거죠. 그 상태로 벽도 통과하고 아파트 6층짜리 높이에서 떨어져 보기도 했어요. 확실히 꿈꾸는 느낌과는 달랐어요.”

기사 이미지

텍사스전기톱 살인사건

김선희(32·온라인 공포소설 작가, 이하 김)=“23세 때였나? 자고 일어났는데 휴대전화가 방전돼 있는 거예요. 분명히 배터리가 꽤 차 있었거든요. 확인해 보니 자고 있는 제 모습이 1시간 동안 휴대전화에 찍혀 있었어요. 그것도 너무 이상하고 무서운데 동영상 소리를 잘 들어보니 여자 음성 같은 목소리가 나지막이 이렇게 속삭였어요. ‘자?’ ‘안 돼’ ‘가자’.”

가위 눌리면 보이는 파란얼굴 남자
오싹한데 자꾸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혼자사는 여자 집, 물건 자꾸 없어져
알고보니 어떤 남자가 침대 밑에…
공포, 공감하기 쉬워 쉽게 확산
왕따·장기밀매 괴담은 현실 반영도

황준영(33·웹툰 작가 겸 대학 강사, 이하 황)=“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사를 갔어요. 짐을 정리하고 너무 피곤해 벽에 기대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벽 뒤로 누군가 자꾸 ‘똑, 똑’ 두드리는 거예요. 옆방에서 누가 장난치나 싶었는데 졸려서 그냥 잤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벽 뒤는 그냥 허공이더라고요.”

송준의(35·공포 블로그 운영자, 이하 송)=“혹시 방 안에 있던 누군가가 친 건 아닐까요? 밖이 아니라 안에서요….”

오륭진(36·구호단체 직원, 이하 오)=“실화를 바탕으로 한 괴담을 듣다 보면 유독 잠이나 꿈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잠자는 시간이 사실 우리 삶에서 죽은 순간과 제일 비슷하잖아요. 또 잠이라는 건 사람이 쉬는 순간인데, 우리가 누군가 죽었을 때도 ‘쉰다’고 표현하고요.”

#내가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

기사 이미지

김선희(32)
온라인 공포소설 작가 출신. 현재는 휴직 중
실화를 바탕으로 한 ‘괴담계의 화수분’
추천 영화 : 컨저링
한줄평 :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공포

오=“어르신들 중에 장례식장 갔다 오면 소금 뿌리는 분 있잖아요? 따라온 잡귀들 쫓아낸다고. 제 지인의 어머니도 그랬나 봐요.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친척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깜빡하고 소금을 안 뿌린 거예요. 그날따라 자꾸 부엌 싱크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래요. 가봤더니 싱크대 수챗구멍 안에서 어떤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더라고요.”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컨저링

황=“주위에 첼로를 전공한 친구가 있는데 귀신을 그렇게 자주 본대요. 하루는 피아노 치는 분과 같이 연습하려고 그분 연주실에 갔어요. 근데 피아노 치는 분이 ‘자꾸 악보가 제멋대로 넘어간다’며 짜증을 내더래요. 그러다 그분이 잠깐 커피를 사러 밖에 나갔는데 제 친구가 본 거예요. 피아노 위에 서서 발로 악보를 한 장씩, 한 장씩 넘기는 어린아이의 형상을요.”

김=“귀신들이 음악을 좋아한다잖아요. 굿 소리와 비슷하다고….”

기사 이미지

송준의(35)
블로그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 운영
13년간 공포 블로그 운영 경력
추천 영화 : 어둠의 여인
한줄평 : 공포와 페미니즘의 교묘한 결합

크=“그래서 그런가? 저희 밴드에서 드럼 치는 친구가 귀신을 많이 봐요. 가끔 그 친구가 새벽에 합주실에서 혼자 귀마개 끼고 연습하는데, 이상한 목소리가 귀에다 대고 ‘뭐하니?’ 이러면서 말을 걸 때가 있대요. 몇 번 그런 적이 있어서 그때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뛰쳐나갔대요.”

기사 이미지

어둠의 여인

김=“수년 전에 공포 동호회 사람들과 1박2일로 엠티를 갔어요. 밤에 촛불 하나씩 켜 놓고 돌아가면서 무서운 얘기를 했어요. ‘자기 얘기 끝나면 앞에 있는 촛불을 끄자. 촛불이 다 꺼지면 귀신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뭐, 별일 없었어요. 다들 시시하다며 잠을 청했죠. 그런데 우리가 무서운 얘기를 할 때 먼저 잔다며 옆방에서 자던 언니가 있었거든요? 그 언니가 그날, 천장에 목을 매단 채 공중에 떠서 우리 방 쪽을 쳐다보던 여자 귀신을 봤대요.”

#요즘 귀신보다 무서운 거? ‘사람’

기사 이미지

황준영(33)
웹툰 작가 겸 대학 강사
어떤 그림이든 무섭게 그려진다는 능력자
추천 영화 : 매드니스
한줄평 : 지금도 꿈에 나오는 명장면들

기사 이미지

황준영 작가의 ‘4컷 호러즈’

황=“그런데 요즘은 괴담 주체가 귀신에서 사람으로 넘어갔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요. 한 여자가 혼자 살고 있는데 자꾸 물건이 하나둘 없어지고 물건 놓은 위치도 바뀌는 거예요. 알고 보니 밤마다 어떤 남자가 침대 밑에 들어가 자고 있었다는 식이죠. 스토킹이나 관음증도 단골 소재고요. 예전에 유영철 사건 터지고 난 직후에는 한창 연쇄살인마 괴담이 돌았고 오원춘 사건 때는 조선족 장기 밀매 괴담이 많았어요. 이런 거 보면 괴담이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거 같아요.”

송=“13년 넘게 공포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그런 부분을 발견하는 게 가장 재밌어요. 1980년대 중후반께인가? 일반인들의 해외여행이 본격화된 때였는데 그때 퍼진 게 ‘오뚝이 괴담’이에요. 신혼부부가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부인이 납치돼 팔다리가 잘린 채 발견됐다는 이야기요. 그건 당시 ‘해외여행을 하면 해외로 한국 돈이 빠져나간다’는 정서가 반영된 거래요. 요새 일본 괴담 사이트에 가면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배경이 우리나라인 거 아세요? 한국 옷가게에 갔다가 팔다리가 잘렸다나. ‘한류’의 영향이 이렇게나 큽니다.(웃음)”

오=“유럽에서는 그동안 동유럽 사람에 대한 괴담이 많았는데, 요샌 시리아 난민을 대상으로 한 괴담이 유행한대요.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아요.”

송=“좀 다른 얘긴데요. 국내 모 공항에 남자 귀신이 출몰한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어요. 공항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경찰 귀신이 공항을 떠돈다는 얘기였죠. 근데 얼마 뒤 경찰에서 전화가 왔어요. 공항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그 괴담을 보고 ‘집값 떨어진다’며 항의를 했대요. 이런 것만 봐도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거 같아요. 그 뒤로 지역 관련 괴담을 얘기할 때 지역명은 절대 안 밝혀요.”

기사 이미지

매드니스

#왜 난 공포와 괴담을 즐기나
기사 이미지

오륭진(36)
구호단체 S 소속 직원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괴담 분석가
추천 영화 : 나이트 워치
한줄평 : 감독이 관객들의 긴장감을 갖고 노는 영화

송=“사람들이 제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불안과 공포가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다른 사람이 차를 샀다는 식의 얘기는 오래 듣고 싶지 않잖아요.(웃음)”

황=“뱀파이어나 좀비, 처녀귀신 등 기묘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있어요. 공포영화 중에서도 ‘기담’처럼 유독 화면이 아름다운 영화가 많거든요. 그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하죠.”

기사 이미지

나이트 워치

크=“괴담이나 영화를 통해 극한의 공포를 경험할수록 오히려 살아 있다는 걸 느껴요. ‘아, 그래도 난 안전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송=“그래서 전 괴담의 한계를 느껴요. 아까 괴담이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괴담의 주인공은 주로 처녀귀신부터 시작해 왕따를 당하다 자살한 학생, 격무에 시달리다 과로사한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괴담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죠.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가 되면 괴담이 나올 수가 없어요.”


▶[젊어진 수요일] 더 보기
① 웹소설 써서 먹고살까? 1년에 ‘한 장’은 법니다
② 맛집 먹방파, 인생샷 찍자파…‘무한 자유’ 찾아 떠나다



오=“같은 맥락에서 전쟁 중에는 괴담이 나오지 않아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괴담이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하죠.”

송=“맞아요. 그래서 괴담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 같아요.”

김=“지금까지 나온 얘기에 다 공감해요. 근데 무엇보다 재밌잖아요!”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