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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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 공군기가 날아온 21일 오후 한때의 상황은 일종의 「공황」 이었다.
공황 (패닉) 은 심리학적으로 일종의 집단적 도주현상이다.
생명이나 생활에 위해를 초래할 것으로 생각되는 위협을 회피하는 집단적 반응이다.
현실적으로 적기가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폭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 불안으로부터 탈출하려는 행동은 통상적인 관례를 벗어나는 행태로 전개된다.
그런 가운데 통신 마비도 또 하나의 불안을 가중시켜 주었다. 민방위 경계경보가 내려졌던 14분 동안 서울·경기지역은 물론 전국의 전화가 거의 두절되고 말았다.
서울의 경우 그 시간의 통화는 평소의 무려 9·4배를 기록했다.
시민들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안부를 묻고 중요기관들에 문의하는 통화가 일시에 몰리는 바람에 용량을 초과하는 과부하가 전화 불통을 부른 것이다.
1965년 11월9일 뉴욕시를 비롯한 미국의 동부해안 지역에서 갑작스런 정전으로 3천만명이 패닉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던 미국인들이 갑자기 몰아닥친 정전 사태에 우왕좌왕하며 공포에 떨어야했다.
84년 11월에는 일본 동경 중심가의 전화국 지하 케이블이 불타는 바람에 21만회선의 전화가 불통, 대 혼란을 야기했다.
화재신고, 범죄신고가 끊기고 법원, 구청, 은행 등의 온라인 시스팀과 상사들의 국내외 팩시밀리가 올 스톱되면서 정보화사회의 최첨단을 자랑하던 컴퓨터 통신 시스팀이 뜻밖의 무용지물로 변해 버렸다.
문명의 이기가 정작 꼭 필요한 순간에 마비되고 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신장 1개는 9배의 커패시티를 갖고 있다. 사람의 신장은 두개니까 18배의 용량이다.
전화용량도 그쯤의 여유가 있으면 문제는 훨씬 가벼울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불필요한 과잉투자요, 불경제일 것이다.
다만 대도시의 중요지역만은 외국처럼 0·3배 규모의 여유를 가져야한다. 광화문전화국의 경우 수용가는 1만7천 회선이나 되는데 피크아워에 3만회선 용량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전략가들은 만일 3차대전이 발발하면 상대방의 전술전략을 조정하는 컴퓨터 시스팀을 파괴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선 컴퓨터전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번 서울의 전화마비상태를 보면 민방위훈련이라는 것도 옛날식대로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명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훈련방식이 개발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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