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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 티셔츠' 논란이 쓰나미가 된 정의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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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세상을 지향하는 줄 알았는데 그 곳에 저는 빠져 있었습니다. 많이 상처입고 탈당합니다.”

“정의당 내 상층부는 무조건 약자, 소수 보호라는 허울 아래 선민의식에 가득 차 보입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정의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당원들이 남긴 탈당의 변(辯) 중 일부다. 지난달 21일부터 시작된 정의당원들의 탈당 관련 게시글은 수백여 건에 달하며 31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4월 총선에서 성과(6석)를 거둔 정의당에 탈당 바람이 분 건 소위 ‘메갈 티셔츠’ 논란에 휘말리면서부터다.

이 논란은 지난달 19일 게임업체 넥슨이 자사 온라인게임에 출연시킨 성우 김모씨를 다른 성우로 교체하면서 촉발됐다. 김씨가 '남혐(남성 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메갈리아’의 판매용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 화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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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의 반발을 우려한 넥슨은 김씨와 상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했지만 사회 각계에서 이를 성토 또는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메갈리아 찬반 논쟁으로 이어졌다. 문화계에서는 '친(親) 메갈리아'로 알려진 웹툰 작가들과 독자들 간의 공방이 이어지면서 'Yes Cut(웹툰 규제 찬성)'운동으로 확산됐다.

불똥이 정의당으로 튄 것은 2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가 '기업의 노동권 침해'라며 넥슨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면서다. 이후 정의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메갈리아를 옹호했다’고 성토하는 한편 메갈리아에 대한 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당원들의 글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의당 측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일부 당원들이 탈당 러시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의당은 논평을 낸지 닷새만인 25일 중앙당 상무집행위원회를 열어 해당 논평을 철회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탈당계를 제출한 당원 중 일부가 “당이 25일까지 기다려달라더니 이날 통장에서 당비를 인출해갔다”고 항의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정의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2008년 당을 두 동강 냈던 종북논란 후 이런 사태는 처음인 것 같다”며 “실제로 평소보다 많은 탈당계가 접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의 특수한 포지셔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계급정당과 이념정당의 토양이 척박한 한국에선 주로 대권 후보나 당 대표를 두고 벌어지는 계파 싸움에서 당원들의 갈등이 촉발된다”며 “반면 정의당은 지역이 아니라 진보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하다보니 이런 가치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종종 일어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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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관계자는 “‘메갈 티셔츠’ 사태가 군소정당인 우리당엔 쓰나미가 됐다”며 "지역 기반이 없는 우리에게 당원 이탈은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한 대변인은 "당원들 중에선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6:4 정도로 높지만 메갈리아가 여성 운동을 표방하는 만큼 당 차원에서 나서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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