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의 학생자제 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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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야권의 개헌서명 착수로 빚어진 정국의 강경 대치가 상당기간 계속되리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도는 가운데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가 학생들의 서명자제를 당부한 것은 특기할 일이다.
이 총재는 17일『개헌서명 운동은 책임 있는 정치인과 민주인사들의 역량으로 이룩되고야 말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학생들의 자중자애를 당부했다.
헌법문제가 학생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관심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 정당이나 국민이면 누구나 헌법문제에 관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견해는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시각과 논리대로라면 학생도 국민의 한 구성원인 만큼 단순한 정치적 의사 표시는 당연한 권리요, 의무라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정치의 이해 당사자는 정치인들이고,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할 일에 학생들이 끼여드는 것은 현실정치란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학생들의 본분은 학문연구에 있지 정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인 이상 나름대로의 참여는 있어도 되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이 총재의 말은 학생들이 서명운동으로 겪는 피해가 야당이나 부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우려한데서 나온 것 같다.
정부의 강경한 자세에 못지 않게 학생들의 저항도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고 그로 인한 연행·구속이 너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헌정사를 보면 정치인들이 자신의 편익에 따라 학생운동을 이용하거나 최소한 은근히 부추기는 듯한 언동을 한 경우가 많았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유신시대이래 정치인들의 희생 못지 않게 학생·종교인들의 희생이 컸던 것은 그런데서도 연유하고 있다.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면서 연행·구속당하고 경우에 따라 정학·퇴학 등 학업의 중도포기뿐 아니라 일생을 망치는 일이 그처럼 많았는데도 정치인들이 이를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취할 행동일 수는 없었다.
야당이 내세우는 대의명분이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럴수록 자신이 앞장서는 것이 정치인들이 취할 대도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 총재의 학생들의 자중자애를 당부한 이번 발언에 담긴 뜻을 평가하고자한다.
학생들의 그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야당 당수가운데 그런 말을 비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결 돋보이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이 총재의 말이 경새 정국을 푸는 돌파구로서 구실을 할 것 같은 조짐은 없다.
그러나 정치를 순리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여망이라고 볼 때 이 총재의 발언은 대화로써 문제를 푸는 윤활유로서의 구실은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헌법문제 같은 초미의 정치문제가 더 이상 학생들의 희생없이 정치권에서 모두 수용되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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