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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연설 1호 클린턴, 47년 뒤 여성대통령 1호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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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후보 수락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설에서 클린턴은 ‘함께’라는 단어를 16번 사용하며 통합의 리더십을 역설했다. 민주·공화당 전당대회가 마무리되면서 본선을 향한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필라델피아 AP=뉴시스]

1998년 1월 미국 현직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상대는 백악관의 스물두 살 인턴. 초유의 스캔들은 전 세계의 관심 속에 수년간 이어졌다. ‘탄핵’과 ‘수치’란 단어가 지면을 도배했다.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은 침묵했고 남편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태풍을 겪은 클린턴이 상처 받고 움츠러들 것이라 짐작했다. 예상은 틀렸다. 남편의 임기가 끝날 무렵 그는 상원의원에 도전해 자신의 정치를 시작했고 마침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선후보가 됐다.

졸업식장서 반전 비판한 상원의원
즉흥연설로 반박해 NYT서도 주목
남편 섹스스캔들 딛고 정계 진출
의원·장관 거쳐 두번째 대선 나서
키신저 “누구보다 국무부 잘 운영”

28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수락한 클린턴의 인생은 도전·극복·집념의 역사다. 위기를 정면 돌파하고 국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새 역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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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은 1947년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 파크리지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휴 로댐은 작은 섬유업체를 운영했고 어머니 도로시는 가정주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웰즐리여대에 진학한 클린턴은 69년 웰즐리여대 최초의 학생 졸업 연사로 선정됐다. 당시 웰즐리여대에선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클린턴에 앞서 연사로 나선 공화당 상원의원 에드워드 브룩이 시위에 참가한 학생을 비판하자 클린턴은 준비한 연설문 대신 브룩의 말을 반박하는 즉흥 연설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에 클린턴의 이름이 등장한 첫 번째 ‘사건’이다.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한 클린턴은 그곳에서 빌 클린턴을 만나 75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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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뒤 빌 클린턴은 아칸소주 검찰총장에 선출되는 등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클린턴도 79년 아칸소주 최고의 로즈 로펌 최초로 여성 파트너가 되는 등 변호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92년 빌 클린턴이 4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클린턴은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힐러리케어’라 불리는 보건개혁을 추진하는 등 독자적 활동을 했고, 95년 베이징 유엔 여성총회에선 성인권 신장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99년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는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의 탄생이었다. 특유의 스킨십으로 대중을 사로잡았고 공화당 후보 릭 래지오를 55대 44로 누르며 당선됐다. 2006년엔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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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권에 도전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클린턴은 뼈아픈 이 패배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2009년 국무장관에 취임했고, 4년 임기 동안 112개국을 방문하는 등 역대 국무장관 중 가장 많은 출장을 다니며 미국의 ‘소프트 외교’ 전성기를 이끌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클린턴은 내가 봤던 그 누구보다도 국무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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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데 실패했지만 여러분 덕분에 1800만 개(클린턴의 총 득표 수)의 균열을 낼 수 있었다. 이 균열로 인해 다음 번엔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다.” 2008년 6월 경선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에서 클린턴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리고 더 높고 견고한 유리 천장을 완전히 깨고 새 역사를 쓰기 위한 100여 일의 대장정에 나섰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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