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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과제 안고…위안부 피해지원 ‘화해·치유 재단’ 출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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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화해·치유 재단’이 28일 공식 출범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히며 재단 예산으로 10억엔(약 107억원)을 내기로 약속한 지 213일만이다.

재단은 오전 10시 중국 순화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현판식과 함께 1차 이사회를 열었다. 정부는 지난 5월 재단 설립준비위를 꾸렸으며,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김태현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이사진도 준비위원 중심으로 구성됐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 등이다. 이사진 10명으로 출범하지만 정관상 15명까지 이사를 둘 수 있어 추후 논의를 통해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 설립의 가장 큰 의의는 양국이 합의한 핵심내용인,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조치로서 출범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며 “사업비용은 일본이 출연하는 10억엔으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이 책임 인정을 전제로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전액 충당하는 10억엔은 사실상 배상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재단이 어렵게 첫발을 뗐지만 어려운 과제들이 여럿 남아 있다. 가장 큰 과제는 재단 출범 자체에 반대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일부 할머니 반대 여전…반쪽짜리 재단 우려

김태현 이사장은 재단 설립 준비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37명을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여기엔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설에 거주하는 할머니들도 일부 포함됐다. 정부 당국자는 “개별거주하시는 할머니 대부분은 12·28 합의를 평가하고 재단에 참여하겠단 입장과 함께 조속히 재단을 만들어서 사업을 실시해달라는 의견을 많이 주셨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27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수요집회에서 재단 설립 중단을 촉구했다. 정대협과 할머니들은 일본의 명시적인 법적 책임 인정과 법적인 배상금 지급이 명시되지 않은 12·28 합의 자체가 무효라는 입장이다. 이들의 반대가 계속된다면 재단이 아무리 의미있는 치유 사업을 한다고 해도 빛이 바랄 수밖에 없다.

10억엔 언제 받아서 어디에?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하는 시점에도 큰 관심이 쏠린다. 12·28 합의에는 한국이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이 10억엔을 ‘일괄거출’한다고만 돼 있지, 거출 시점은 명시되지 않았다. 일본 측의 자금 출연이 지연된다면 재단 사업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이 설립되면 자금 출연이 차질 없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단 설립 문제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25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주의제로 올랐다. 외교부는 “10억엔 거출 시점 등 구체적 언급은 없었지만 재단의 조속한 출범을 위해 협력하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10억엔은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필요한 사업에 쓴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민간 기금 모금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는 재단 이사회가 구체적으로 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념관 건립 등 상징적인 추도사업보다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을 최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재단 운영에 들어가는 행정비용도 10억엔에서 충당할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재단과 관련해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10억엔에서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재단 설립 준비위 논의 과정에선 “합의의 의의나 피해자 의견 등을 생각해보면 10억엔은 사업비로만 쓰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재단 운영 비용을 한국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면,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란 합의의 의미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다. 최종적인 결정은 재단 이사회에서 하게 된다.

일본의 ‘소녀상 철거’ 연계 우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12·28 합의 이후 공공연하게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이 10억엔 거출의 조건이라는 듯한 발언을 수차례 했다. 그간 정부는 이에 대해 “소녀상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재단이 발족하고 실제로 일본이 10억엔을 내야 하는 시점에도 일본이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용납하지 않겠단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합의 어느 부분을 봐도 소녀상 철거나 이전을 10억엔 거출과 연결짓는 내용은 없다. 일본이 그런 주장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만약 그런다면 이는 명백한 합의 파기”라고 말했다.

재단의 존속기간은 확정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 존속기간은 설립 취지 진척상황등을 감안해 재단에서 구체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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