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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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닐라에 군의 적색경보가 선포된 가운데 7일 필리핀 대통령선거가 실시됐다. 69년 이후 처음 갖는 대통령 선거다.
이번 선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왔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임기를 1년여 남겨놓고 앞당겨 실시된 필리핀선거는 독재와 부패·비능률로 상징돼온 현재의 족벌 과두 체제에 대한 국민 신임투표의 성격을 갖는다.
이번 선거는 또 민주주의를 위장한 장기독재가 선거에 의해 교체될 수 있는가를 가름하는 하나의 정치보험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선거취소의 루머까지 돌았었던 지난 57일간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폭력과 금력이 난무하고 정부기관에 의한 선거간섭 사례가 보도되긴 했지만 큰 이변없이 투표를 갖게된 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마르코스」 집권체제를 둘러싼 공방전이기 때문에 이렇다한 정치적 이슈가 없는 선거전이었다.
정치수준이 낮은 일반 대중속에 파고드는 전략으로 임한 「마르코스」는 53대37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야당측은 야당의 최대세력인 유니도야당연합 조직력과 피살된「마르코스」 의 정적 「아키노」 전 상원의장의 후광및 그 미망인 「코라손」 여사의 개인적 인기를 결합하여 주로 도시와 지식층에 역점을 두면서 55대45의 승리를 주장하고있다.
그 동안 건강이 좋지않은 「마르코스」(68)대통령이나 도전자「코라순」(53) 「라우렐」(57)팀은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남은 것은 순조로운 투표와 공정한 개표, 정확한 계표 뿐이다.
투·개표 과정을 지켜보기 외해 미국의회의 참관인단 20명이 현지에 가있다.
미국은 필리핀의 후견국일 뿐만 아니라 그곳에 중요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어 필리핀의 국내문제에 방관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7천여개의 섬과 넓은 정글지대로 구성돼있는 필리핀의 선거에는 항상 개표에 따른 구설수가 따랐다.
84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의 초반 개표과정에선 야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야당의 부정개표주장과 함께 야당우세지역에서 개표가 지연되면서 결과는 여당우세로 바뀌기 시작했다.
78년 여당이 압승할 때는 개표가 4일만에 끝났으나 84년 선거에선 2주일이 넘도록 진행되는 가운데 여야간에 부정에 대한 공방전이 계속됐었다.
그러나 그 동안 필리핀국민의 정치의식도 많이 발전되고 여당도 정치적으로 한층 성숙됐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필리핀 선거의 개표가 누구나 납득·승복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도 정확하게 진행되어 필리핀을 지켜보는 모든 세계인이 실망하지 않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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