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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매매 넘어 자산관리·IB·부동산으로 승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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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18면

#1. 이달 15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업무상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벤처투자자(VC) 데이비드 리 리팩터캐피탈 대표가 스타트업 투자 강연을 했다. 구글 출신인 그는 2009년 거물 투자자 론 코웨이와 함께 SV엔젤을 설립해 에어비앤비·스냅챗 등 400여 개 스타트업을 발굴했다. 이날 행사는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인 SNI(Samsung &Investment) 고객을 위해 마련했다. SNI본부를 이끄는 이재경 상무는 “고객 상당수가 최고경영자(CEO)이기 때문에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각 분야 전문가의 강연을 자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말부터 SNI본부를 사장 직속 부서로 분리해 조직을 강화했다. 이곳의 프라이빗뱅커(PB) 35명이 운용하는 자금만 15조원에 이른다.


#2. 메리츠종금증권은 이달 들어 미국 랜드마크급 빌딩 인수에 연달아 참여했다.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있는 아마존 물류센터는 한화자산운용이 설정한 1억1600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 펀드를 통해 매입했다. 펀드 자금 중 40%(약 4800만 달러)를 메리츠종금증권이 부담한 뒤 셀다운(인수 후 재매각) 방식으로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에게 팔았다. 부동산 펀드로 인수한 시애틀의 세이코 플라자도 메리츠종금이 갖고 있는 지분을 곧바로 재매각했다. 메리츠종금증권 관계자는 “현재 해외 부동산 관련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며 “최대한 투자위험을 낮추기 위해 부동산 매입 후 단기간 내에 되파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설립 등 사회 기부까지 자문지금까지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영업에 치중했던 증권사가 자신만의 강점을 내세운 특화전략을 펼치고 있다. 위탁매매 수익이 갈수록 줄고 있어 새 먹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스피 지수가 2011년 이후 6년째 박스권에 갇혀 거래 대금이 준데다 증권사가 고객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위탁매매 수수료를 경쟁적으로 낮추면서 수익성이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증권사의 전체 위탁매매 수익은 약 4조6000억원으로 2011년에 비해 9000억원 가량 적다. 요즘 증권사들이 새로운 수익모델로 주목하는 분야는 자산관리(WM)·투자은행(IB)·부동산금융 3가지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최순영 연구위원은 “한국 증권 산업도 저성장·고령화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며 “선진국의 경우 은퇴 이후에 대비한 근로자들의 자산관리 수요와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기업들의 인수합병(M&A)에 대한 자문 수요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특히 고액 자산가의 자금을 굴리는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대표적인 위탁매매 중심 회사였던 대신증권이 WM를 핵심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금융주치의 MBA’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병원의 주치의처럼 고객의 투자 건강을 책임지는 금융주치의(PB)는 500여 명 영업직원 중 내부 선발을 거쳐 45명 만을 뽑았다. 이들에게 고액자산가 눈높이에 맞춰 세무·상속·보험 등 전문 지식을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이후 세미나·해외연수 등 5단계를 거쳐야 프로그램을 수료할 수 있다. 올해는 영업직원 성과 평가(KPI·핵심성과지표)에 1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 수와 고객 자산을 포함하기로 했다.


이처럼 자산관리 영업을 강화하면서 영업점도 바뀌고 있다. 압구정지점은 고객을 위한 문화공간인 ‘아뜰리에’를 만들었다. 오후엔 도자기·퀼트·자수 강좌를 운영하고 저녁엔 인문학 강의가 열린다. 장영준 대신증권 압구정 부지점장은 “고객이 편히 머물면서 인맥을 쌓고 다양한 문화강좌를 즐길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라며 “고객과의 접점이 늘면서 지난해 100억원 이상의 신규 자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가치주 투자의 명가’로 불리는 신영증권도 WM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반 증권사와 달리 4년 전부터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로 특화했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낯선 용어다. 19세기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집사에게 체계적으로 자산을 관리하도록 한 게 패밀리오피스의 시작이다.


요즘엔 고액 자산가(기업가)의 자산 뿐 아니라 상속·증여·세금 등을 전담해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영증권은 현재 400여 가문(기업가)의 총자산 1조원을 운용하고 있다. 이곳은 돈이 많다고 가입할 순 없다. 기존 패밀리오피스 고객이나 회사 고위 경영진의 추천을 받아야만 회원이 된다. 패밀리오피스 고객은 금융투자, 부동산 매매, 상속 등 모든 금융 업무에 대해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자산가의 관심이 큰 재단설립 같은 사회 기부까지 자문해 준다.


신한도 덩치 키워 기업 금융 뛰어들 채비이와 달리 M&A로 몸집을 키운 대형증권사는 IB를 새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증권업의 꽃으로 불리는 IB는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기업공개(IPO), 회사채 발행, 구조화금융, M&A 등을 주간하고 자문한다. 골드만삭스나 노무라증권이 대표적인 투자은행이다.


미래에셋증권은 ‘노무라를 넘어선 글로벌 IB’를 청사진으로 내세웠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2조4000억원이 넘는 값에 KDB대우증권을 인수했다. 올해 10월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인수를 마무리하면 자기자본 7조6872억원(자사주 포함)의 국내 1위 증권사가 된다. 통합 증권사의 목표는 뚜렷하다. 글로벌 IB은행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대우증권 인수 뒤 “2020년까지 자기자본 10조원, 세전이익 1조원을 달성해 아시아를 넘어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 회장의 통큰 베팅으로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쓴잔을 마신 한국투자증권도 4년 안에 아시아 최고 IB가 되겠다는 게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올 초 조직을 개편했다. 기존 IB본부를 1·2본부로 세분화하고, 기업금융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퇴직연금을 한데 묶어 ‘IB그룹’을 신설했다.


미래에셋과 한투가 해외 IB시장을 공략한다면 NH투자증권은 안방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증권사 처음으로 IB분야에서 경상이익이 1000억원을 넘어섰다. IPO·유상증자·인수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골고루 성과가 좋았다. 지난해 ‘IPO 최대어’로 꼽은 LIG넥스원의 주관사를 맡아 코스피시장에 상장시켰다. LIG넥스원은 상장 후 한 달 동안 주가가 30%이상 올랐다.


대형 증권사들이 잇달아 IB를 강화하자 신한금융지주는 이달 21일 이사회에서 신한금융투자 자본금을 5000억원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신한금융투자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증권사에 부여되는 기업 신용공여(대출), 프라임브로커리지(헤지펀드 전담 중개·대출·상담) 등의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NH투자·현대·한국투자·삼성증권 총 5곳이다.


반면 메리츠종금증권은 부동산금융으로 특화해 지난해 깜짝실적을 냈다. 지난해 순이익이 2873억원으로 1년 전(1447억원)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80% 이상 늘어난 405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순영업수익)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기반인 기업금융 실적이다. 성과가 좋은 첫번째 비결은 인재다. 현재 ‘크레딧 애널 1세대’로 불리는 길기모 본부장을 비롯한 리스크 관리팀과 회계사·신용평가사 등이 속한 심사팀 등 24명이 리스크 관리를 맡고 있다. 이들은 꼼꼼하게 투자할 부동산을 고르는 동시에 리스크를 관리한다.


또 부동산금융 중 60% 이상을 미분양담보대출확약(미담확약)으로 운용한다. 미담확약은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가 미분양될 경우 이를 담보로 사업자에 부족한 자금을 대출해 주는 금융기법이다. 메리츠종금증권 관계자는 “미담확약 사업을 시작한 2011년 3월 말 이후 체결한 146건(총 6조2000억원) 중 실제로 미분양이 발생해 대출을 실행한 것은 단 한 건(293억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쌓은 실적 자료를 기반으로 올들어 해외시장에도 본격 진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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