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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온몸으로 그리는 화가 석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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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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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석창우 화백이 중앙일보 지면에 등장했다.

그런데 그가 등장한 지면이 문화면이 아니라 스포츠면이었다.

중앙일보 올림픽 지면과 기사를 안내할 픽토그램을 그가 그린 게 이유였다.

그를 처음 본 건 3년 전 TV에서다.

양팔이 없는 그가 갈고리에 붓을 꽂고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도 감동이거니와 작품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초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오래지 않아 그의 집을 방문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1984년 10월 29일, 2만2900V 고압 전류에 감전되었어요.

일주일 후에 깨어나 보니 두 팔과 두 발가락이 없어졌습디다.

그나마 두 다리는 남아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사연을 들려주는 표정이 묘했다. 싱글벙글이었다.

마치 무용담 들려주듯 이야기를 이었다.

“1년 반을 병원에서 보냈죠. 양팔을 절단하고 12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했습니다.

어느 날, 네 살 된 아들이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해 참새를 그려줬어요.

그것을 본 아내가 그림을 배워 보라고 권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새 삶을 그렇게 얻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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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진행하던 초상화 시리즈는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삶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굴과 갈고리를 한 앵글에 클로즈업으로 담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 포즈를 할 수가 없었다.

의수를 팔처럼 들어 스스로 접을 수 없었다.

그 동작 하나하나도 억지로 만들어줘야 했다.

시간, 상황, 계획, 그 모든 게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런데도 그가 말했다.

“두 팔 다 가진 30년 전의 나, 두 팔 없는 지금의 나, 전혀 바꿀 맘 없습니다.”

그 후, 그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10월이 되면 절단된 팔의 손과 손목, 팔꿈치가 몸살 날 때처럼 아프다.

손바닥 전체가 망치로 맞은 것처럼 아프고, 손가락 하나하나도 그렇게 아프다.’

손가락·손바닥·손목·팔꿈치, 그에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아프다고 했다.

그와 통화를 했다.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아파요. 그래서 환상 통증이죠. 사고가 난 10월이면 유난히

더 아프죠. 특히 붓을 잡는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그렇게 아프네요.”

다음달이면 올림픽이 시작된다.

그가 온몸으로 그려낸 28개 종목의 픽토그램이 올림픽 지면을 안내할 것이다.

이 모두, 없는 손가락·손바닥·손목·팔꿈치의 아픔과 그의 온몸이 그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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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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