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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국내 최고 블록버스터 '부산행' 제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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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5개월의 치열한 훈련 구슬땀으로 빚은 한국형 좀비

국내 최초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 제작기

한국영화 사상 첫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연상호 감독)이 7월 20일 개봉하며 올여름 극장가, 블록버스터 격돌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짜릿함은 KTX 열차, 서울역과 대전역 등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에 외래종 괴물인 좀비를 풀어놓은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것도 테크노 음악에 맞춰 브레이크 댄싱하듯 현란하게 움직이며 공격해 오는 좀비들 말이다. 그 상상력이 총제작비 115억원(순제작비 85억원)의 쾌감 가득한 좀비 액션 블록버스터로 결실을 맺기까지 ‘부산행’이라는 열차가 달려온 길을 돌아봤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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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산행` 스틸컷]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낳은 좀비영화


서울역의 좀비들이 부산행 KTX에 올라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연상호(38) 감독의 머릿속에 ‘부산행’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 그는 실제 부산으로 향하는 KTX 열차에 타고 있었다.

2014년 말, 애니메이션 ‘서울역’(8월 개봉 예정)의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하던 중 일이 있어 부산으로 내려가던 때였다. 알려진 대로 ‘부산행’은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사회 비판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연출작이다. ‘부산행’은 그의 애니메이션 차기작인 ‘서울역’과 그 내용이 대략적으로 이어진다.

‘서울역’이 서울역·회현역 등 서울 지역에 좀비들이 나타난 하룻밤의 풍경을 그린다면, ‘부산행’은 그 좀비가 부산행 KTX에 올라탄 이후의 상황을 비춘다. 어느 날 새벽, 서울을 떠나는 부산행 KTX 열차에 어딘가 아픈 듯한 소녀가 가까스로 올라탄다.

그가 좀비로 변하자 열차 안은 금세 지옥으로 변한다. 열차에 타고 있던 펀드 매니저 석우(공유), 한주먹 하는 상화(마동석), 고등학생 야구 선수 영국(최우식)은 각각 딸 수안(김수안),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친구 진희(안소희)를 구하기 위해 좀비들이 들어차 있는 열차 칸칸을 헤치고 나간다.

“‘서울역’의 투자배급사 NEW가 그 작품을 실사영화로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터였다. 애니메이션이든 실사든 똑같은 이야기를 두 번 보여 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 즈음 ‘부산행’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울역’보다 세계관이 훨씬 덜 암울한 ‘부산행’이 제작비가 더 많이 드는 실사영화, 즉 상업영화로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연 감독의 말이다. 자연스럽게 두 작품 모두 그가 연출을 맡게 됐다.

지금껏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 연 감독에게 ‘특정 이야기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중 어느 쪽에 더 어울리느냐’ 하는 질문은, 두 장르가 지닌 표현력이나 기술력의 차이를 묻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제작비를 들인 상업영화로 만들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그의 설명을 들어 보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일수록 흥행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미 검증받은 소재나 공식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부산행’은 별난 작품이다.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 최초로 좀비라는 소재를 끌어들였으니.”

색다른 소재를 다루는 상업영화인 만큼 연 감독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즉 관객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시속 300㎞로 달리는 KTX 열차처럼 극의 흐름이 빠르고, 액션이 주가 돼야 한다는 것이 ‘부산행’의 기본적인 컨셉트였다.

얼마 뒤 ‘서울역’의 프로덕션 작업이 시작되면서 ‘부산행’의 시나리오 작업은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 장준환 감독)의 각본을 쓴 박주석 작가가 맡았다(연 감독은 지금껏 연출한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모두 직접 썼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박 작가와 연 감독이 풀어야 했던 가장 큰 난제는 ‘열차’라는 공간이었다. 연 감독이 웃으며 말한다.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만 해도 사건 대부분이 열차 안에서 일어나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막상 이야기를 풀어 가다 보니,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더라. 살아남은 승객들이 좀비들을 헤치고 객실 칸칸을 옮겨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매번 다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아이디어를 모았다.”

두 사람은 영화에 등장하는 기차역을 몇 번이고 답사하며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촬영을 시작한 뒤에도 스태프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열차 칸마다 들어찬 좀비들을 물리치는 방법이 겹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연 감독의 말처럼 극 중 좀비에 맞서는 석우·상화·영국은 어느 칸에서는 상화가 좀비를 메어꽂고, 어느 칸에서는 석우가 꾀를 부리고, 어느 칸에서는 영국이 좀비가 된 친구들을 충격 속에 마주하는 등 매번 다른 상황에 놓인다. 순간순간 다른 긴장을 빚는 이야기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빠르고 공격적인 ‘한국형 좀비’의 탄생



시나리오를 완성해 가는 동안, 한쪽에서는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좀비와 열차를 구현할 방법을 연구했다. 먼저 좀비. 연 감독은 미국 TV 시리즈 ‘워킹 데드’(2010~, AMC)나 서양의 좀비영화에 많이 나오는, 반쯤 잘린 살점을 달고 다니는 식의 과격한 묘사는 피하고자 했다. 좀비영화지만 최대한 사실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자는 원칙을 여기에도 적용한 것.

연 감독은 “좀비의 위력이 발휘돼야 하는 부분은 겉모습이 아니라 움직임”이라 생각했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좀비를 CG(컴퓨터 그래픽)로 만들어 내는 걸 최대한 피하고, 특수분장한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도록 했다.

한 장면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100여 명까지 동원된 좀비 역 배우들의 몸동작을 디자인하는 일은 박재인 바디 무브먼트 컴포저(Body Movement Composer, 이하 컴포저)가 맡았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특정 몸동작을 설계하는 역할이다. 박 컴포저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哭聲)’(5월 11일 개봉, 이하 ‘곡성’)에서 좀비의 움직임은 물론, 무당의 굿판과 귀신 들린 아이의 몸동작을 디자인한 바 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 조지 A 로메로 감독) 같은 전통적인 좀비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은 느릿느릿 움직이지 않나. 조금만 빨리 달리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웃음). 그보다 훨씬 빠르고 공격적인 좀비를 표현해 보자는 데 연 감독과 뜻이 맞았다.” 또 하나, 연 감독은 좀비가 인간과 확실히 구분되는 움직임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 감독이 예로 든 것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노센스’(2004)에 등장하는 소녀형(少女形) 로봇이다. 연 감독의 말을 들어 보자. “‘이노센스’의 메이킹 영상에서, 이 로봇들은 인간과 반대의 순서로 움직인다고 설명하더라. 예를 들어 팔을 들어 올릴 때 인간은 손부터 뻗고 팔꿈치·어깨 순으로 움직이는 반면, 로봇은 그 반대 순서를 따르는 거다.”

그 움직임을 익히기 위해 좀비 역 배우들은 각자 맡은 좀비 유형에 따라 걷는 동작부터 관절을 꺾고 고개를 젖히는 동작까지 길게는 다섯 달 동안 훈련받았다. 박 컴포저는 “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해 줬다”며, 힘든 훈련을 마다하지 않은 좀비 역 배우들의 노고를 높이 샀다. 그건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바다.

지난여름 뙤약볕 아래, 몇 시간에 걸쳐 특수분장한 채 카메라 앞에서 한시도 쉬지 못하고 팔다리를 꺾으며 고생한 그들. 살아남은 사람들을 연기한 주연 배우들 역시 “좀비 역의 배우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힘들다는 말을 함부로 꺼낼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한 장면에 수십 명씩 등장하는 좀비 역 배우들의 분장을 짧은 시간에 마쳐야 하는 작업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국영화의 특수분장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이 그 과제를 맡았다. 수십 명의 좀비 떼가 뒤엉키는 액션 장면은, 박 컴포저와 서울액션스쿨의 허명행 무술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동선과 동작을 짰다. 그리고 좀비로 분장한 무술 팀원 몇몇이 좀비 떼 사이에 섞여 격렬한 액션을 소화하는 식으로 촬영했다.

그중에도 극 후반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달리는 열차에 좀비 떼가 줄줄이 매달리는 장면은 촬영 현장 스태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힘을 모아 완성한 것이다. 원래는 석우가 좀비들을 피해 달리는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타는 장면이었다.

이것이 심심하다고 판단한 연 감독은 영화를 한창 찍던 중, 이 장면에서 수많은 좀비들이 석우를 쫓아 열차에 줄줄이 매달리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가 그때를 회상한다. “스태프들이 ‘갑자기 그렇게 큰 장면을 만들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도, 곧바로 시각 효과·특수 효과·무술팀이 머리를 맞대고 그 장면을 어떻게 구현할지 회의하더라(웃음). 그런 식으로 베테랑 스태프들이 알아서 준비해 준 부분이 굉장히 많다. 정말 고마웠다.”

그 장면에서 열차에 매달린 좀비 행렬 중 맨 아래 깔려 자갈밭 위를 구르는 좀비들은 실은, 전투 장면 등에서 시체로 쓰는 더미들이다. 그 위에 좀비 역의 배우들이 올라타 석우를 위협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후반 작업 단계에서 CG를 가미한 것이다. 극 후반 가장 큰 볼거리를 이루는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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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산행` 스틸컷]


시속 300㎞의 속도감까지 살린 KTX 세트



KTX 열차와 역사(驛舍)를 구현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관객이 익히 아는 공간인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실제 KTX 열차 도면은 보안 문제로 입수할 수 없었다. 결국 이목원 미술감독과 미술 팀원들이 직접 KTX 열차를 타고 각종 치수를 잰 뒤, 그걸 기준으로 세트를 만들었다.

세트는 좁은 객실을 다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촬영 장비와 스태프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고려해 제작했다. “영화에 나오는 열차 객실이 전부 열일곱 개다. 세트로는 객차 두 칸, 연결 통로 세 칸을 조립식으로 제작했다. 이를 분리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다른 객실 열일곱 개를 모두 표현했다.” 이 미술감독의 설명이다. 객실 안 장면은 대부분 이 세트에서 촬영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객실 세트의 창에 LED 패널을 달아 촬영 단계에서 창밖 풍경을 완벽하게 나타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지금껏 한국영화에서는 열차 세트의 창에 그린 스크린을 붙여 촬영한 뒤, 이 부분을 후반 작업에서 CG로 채워 넣었다. 더욱이 KTX 객실에는 광고판, 좌석 등받이와 손잡이 등 빛을 반사하는 물질이 많다.

여기에 비치는 그린 스크린 특유의 빛과 질감을 일일이 다 지우고 창밖 풍경의 반사 이미지를 채워 넣으려면 CG 작업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황수 시각효과감독이 LED 패널을 이용하자고 제안한 것. 이전에 한국영화에서는 이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 적이 없었기에 가(假)세트를 따로 지어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웠던 것은 LED 패널로 부산행 KTX 열차의 창밖 풍경을 영사하는 동시에, 세트 안으로 그 풍경에 맞는 양과 각도의 빛을 비추는 작업이었다. 이에 박정우 조명감독은 패널마다 40여 개 채널로 조정할 수 있는 조명 장치를 달아 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에 쏟아지는 빛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박 조명감독은 “극 중 열차가 깜깜한 터널로 진입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조명의 효과가 완벽하게 발휘돼 정말 뿌듯했다”고 말한다. 이로써 CG 작업의 수고와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오히려 역사 건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CG가 많이 동원됐다. 특히 극 중 대전역에 도착한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려, 역사 여기저기에서 좀비의 공격을 받는 장면. 사실 이 부분에는 대전역에서 촬영한 장면이 단 한 컷도 없다.

플랫폼, 역사 안 유리문, 에스컬레이터 등의 공간 모두 실제 대전역과 유사한 기차역들을 찾아 이곳저곳에서 촬영한 것을 편집해 이어 붙인 것이다. 플랫폼 장면만 해도, KTX 열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시골의 작은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촬영한 뒤 그 배경을 CG로 만들어 채웠다.


쓸 것만 찍는 초스피드 촬영



좁은 세트에서 주연 배우 및 스태프들을 비롯해 좀비 역을 맡은 수십 명의 배우들과 함께 대규모 액션신을 만들어야 하는, 정교하고 복잡한 촬영. 그럼에도 연 감독은 예정보다 앞당겨 촬영을 마쳤다. 실사영화를 처음 연출하는 감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대목이다.

이목원 미술감독 등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연 감독이 완성본에 사용할 컷만 찍어 촬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난 날이 많았다”고 돌이킨다. 실제로 원래 70회차로 예정돼 있던 ‘부산행’의 촬영은 67회차로 마무리됐다. 이런 규모의 액션 영화를 예정된 회차보다 적게 촬영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작업할 때는 중간에 완성된 컷을 움직이는 영상 형태로 확인할 수 없다”며 “실사영화는 촬영장에서 현장 편집본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감독으로서 판단을 내리기 수월했다”고 말했다. 결국 ‘부산행’은 현장 편집본에서 3분 정도를 덜어 낸 것이 최종 편집본이 됐다. 연 감독은 “쓸 컷만 찍었기 때문에, 편집을 달리 하고 싶어도 대체할 영상이 없어 못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형덕 촬영감독에게 ‘액션 장면에서 컷을 너무 잘게 나누지 말고, 관객이 공간과 동선을 파악할 수 있도록 컷을 길게 가되 카메라 회전을 잘해 속도감을 높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난 ‘이 컷부터 저 컷까지는 근사한 롱테이크로 담아야겠어’라는 식의 고집을 부리지는 않는다. 영화의 완성도는 그런 식의 기교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촬영 초기에는 애니메이션 같은 표현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실사영화에 안 어울린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난 포기가 빠른 사람이다(웃음).”

‘부산행’은 원래 올해 5월 개봉을 목표로 제작됐다. 그보다 훨씬 큰 시장인 여름 극장가로 옮겨온 건, 현장 편집본을 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올여름 최고의 흥행작이 될 만한 작품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연출작인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받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관심이 ‘부산행’에 쏠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얼떨떨하다”는 연 감독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닌 듯하다. 한국 블록버스터 최초의 좀비들을 태운 ‘부산행’ 열차가 도착하는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부산행'과 애니메이션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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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진 2)에서 서울에 창궐하는 좀비가 ‘부산행’의 KTX 열차를 타고 달린다. 이야기 순서로 볼 때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퀄인 셈이다. ‘부산행’에는 이를 상징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열차가 서울역에서 출발하기 직전 올라탄 소녀. 핏줄이 시퍼렇게 번진 다리를 질질 끌고 복도를 걷던 소녀는 곧 좀비로 변한다(사진 1).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은 유명 배우 중 한 명이 이 소녀를 연기한다. 사지를 뒤트는 연기가 아주 기괴하다. 정작 연 감독은 “‘서울역’과 ‘부산행’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부산행’에서 승객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열차의 TV로 뉴스를 지켜본다.

그 뉴스 화면에 나오는 상황이 ‘서울역’에서 그려진다고 보면 된다.” ‘서울역’은 ‘부산행’의 열차가 서울역을 떠나는 새벽이 오기까지 하룻밤 동안을 배경으로, 좀비 떼와 이들을 저지하는 전투 경찰들의 대치 상황을 그린다.

<실감 나는 창밖 풍경의 비밀, LED 후면 영사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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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은 부산을 향해 질주하는 KTX가 무대다. 제작 여건상 실제 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에서 촬영하기는 어려운 상황. 정지 상태의 열차 세트에서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 풍경과 빛의 움직임을 어떻게 하면 보다 사실감 있게 표현할까. 제작진에게 떨어진 이 난제를 해결해 준 묘안이 바로 LED 후면 영사 기술이다.

톰 크루즈 주연의 SF 액션영화 ‘오블리비언’(2013,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먼저 선보인 것으로, 한국에서 이 기술을 도입한 건 ‘부산행’이 처음이다. 쉽게 말해, 열차 양쪽 창문 부분에 LED 패널을 붙여 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의 창밖 풍경을 담은 영상을 재생시키는 방식. 이형덕 촬영감독은 최대한 현실감 있는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 열차 창문 밖에 300여 개의 LED 패널을 이어 붙여 거대한 영사 장치를 만들었다.

기존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아무것도 없는 그린 스크린에 둘러싸인 채 나중에 CG로 합성될 배경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지만, ‘부산행’에서는 배우들이 실제 기차 안에 있는 것처럼 실감 나는 환경에서 극 중 상황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장성란·나원정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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