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프랑스 예술풍토 실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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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 나라 근대 양화사에서 「파리」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기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의 일이다. 1925년에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설초 이종우가 파리에 당도했고 그 이듬해 살롱 도톤에서 그의 출품작 한 점이 입선되기까지 했다.
그 이후 한동안 뜸하다가 한국 미술가들의 「파리 바람」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6·25동란이 끝난 서울 환도후의 일이며 그 선두주자가 아마도 김환기 남보 등일 것이다.
그리하여 50년대 후반부터 파리에 일종의 한국미술가 러시가 이루어졌으며 그들 중 중견급 작가들만도 열 손가락을 넘는 숫자였다. 하기는 이 숫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지극히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기는 하나….
어찌했건「파리 물을 마신 우리나라 화가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오늘날, 이번의 「서울-파리」 전을 대하면서 새삼스럽게 서울과 파리의 각기의 얼굴을 다시금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파리의 미술은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과거의 영광이라는 후광 (후광) 에 비쳐진 얼굴이요, 또 하나는 「위협받은 문화와 스스로에 대해 회의하는 문화」 (작금에 서울을 다녀간 프랑스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의 표현이다)에 당황하고 있는 얼굴이다.
불구하고 파리는 우리 미술가들에게 있어 「망향의 도시」로 남아 있음에는 틀림없다. 또 사실 우리는 그 영광의 프랑스 미술에서 자양분으로 삼을 것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특히 프랑스에서 체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교훈, 그것은 자유로운 예술풍토요, 그 속에서 가꾸어지는 자유로운 예술정신이다.
우리의 미술은 아직도 다분히 폐쇄적이요, 경직되어있다. 다만 그 경직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볼 거울이 없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서울-파리」 전에 출품된 화가들의 작품들(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은 이 전시회에 특별초대 전시된 것이다)이 그 「거울」 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번에 한불수교 백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꾸며진 「서울-파리 전」이 지닌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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