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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와인 살 돈 없어 시음회에서 공부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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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 양윤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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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엄마가 와인 살 돈을 안 줘서 시음회 찾아다니고, 선배들 쫓아다니면서 공부했어요.”

지난 8일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국 소믈리에 대회 15회 우승자 양윤주(28)씨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소감을 말하자 좌중에서는 폭소가 쏟아졌다.

남성 우승자들의 승률이 높다고 알려진 대회지만, 올해 1위부터 5위까지 우승자 리스트에 남성 소믈리에는 없었다. 여성 참가자 다섯 명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그중에서도 양씨는 ‘악바리’라고 소문이 났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여섯 번이나 대회에 참가했고, 다섯 번 상을 탔기 때문이다.

열세 살 때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떠나 열아홉 살에 귀국한 그는 스무 살 때 이태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바텐더를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인을 많이 팔면 혜택이 있을 거라는 회사의 공지에 어떻게 하면 와인을 팔 수 있을까 고민하다 와인 바에 취직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9년 지금 근무하는 동부이촌동 ‘하프 파스트 텐’에서 일하며 처음 와인을 접했다. 그 후엔 와인에 깊이 빠져들었다.

외교관·파티시에 등 해보고 싶었던 일이 수십 가지도 넘는 호기심 많은 성격이었지만 와인을 감별하고, 추천하는 일보다 재밌는 건 없었다. “3년 동안 독학으로 와인을 공부했어요. 그러다 2009년 처음 참가한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1차 합격을 했죠.” 첫 대회치고는 좋은 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해엔 보기 좋게 예선 탈락했다.

‘독학만으론 안 되겠구나’ 생각했던 양씨는 WSA 와인 아카데미에서 공부해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그는 “시험을 준비하는 몇 년 동안 새벽에는 졸음과 싸워가며 테이스팅을 했고, 학교 친구를 만나 수다 한 번 제대로 떨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이었던 방송인 이다도시가 냈던 문제는 “삼계탕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달라”였다. 그는 요리의 따뜻한 정도, 닭고기의 묵직한 정도, 향신료 풍미를 고려해서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부브레’(Vouvray) 화이트 와인을 추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승하고 나서 정말 많은 이들에게 축하를 받아 기뻤지만, 바에서 일하며 손님에게 와인을 추천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양씨는 2009년 일을 시작한 와인바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그 와인바의 대표가 됐다.

좋아하는 와인을 묻자 “소믈리에가 개인적인 취향을 가지면 객관적인 추천이 어려워 대답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손님에게도 꼭 마셔본 와인만 추천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와인 값이 비싸잖아요. 잘못 추천해서 손님의 기분을 망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생겨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그런 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와인과 매칭해보는 기획을 구상 중이에요.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해나가며 사는 것, 그게 제 꿈이자 미래예요.”

만난 사람=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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