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사드 시위 전단 돌린 초등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윤호 기자 중앙일보 대구총국장
기사 이미지

김윤호
사회부문 기자

17일 오후 경북 성주군청 주차장. 한 초등학생이 기자에게 다가와 전단을 건넸다. ‘사드가 남한 방어용? 아닙니다!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느냐. 누가 나눠 주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 초등생은 인사만 꾸벅 하고 대답 없이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지난 12일부터 성주군청 주차장에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300여 명의 주민이 “성주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며 자진해 모였다. 17일에는 1500여 명까지 불어났다. 성주교육지원청은 이날 촛불집회에 성주읍내 초·중·고생 2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지난 15일 황교안 국무총리 일행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성주 배치 결정에 대한 설명회를 하기 위해 성주군청을 찾았다. 황 총리가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사드 배치 결사반대” “생존권 보장하라” “네가 여기서 살아라”는 비난과 항의를 쏟아냈고, 황 총리는 군민과 트랙터 등에 둘러싸여 6시간30분 동안 갇혔다.

기사 이미지

지난 15일 ‘사드배치 결사반대’ 머리띠를 하고 성주군청에서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 [프리랜서 공정식]

이 현장을 학생 수백여 명이 지켜봤다. 당시 “우린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울먹이는 학생들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학생들의 시위 참여가 갑자기 늘자 급기야 지난 16일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는 “방과후 촛불집회 참여는 자율적이지만 자녀가 정규 수업 시간 중에 궐기대회나 시위에 참여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자제를 요청했다.

정부가 성주를 사드 배치 후보지로 발표하면서 성주 군민들이 놀라고 반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다. 특히 성주 농민들이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성주 참외 생산에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봐 노심초사하는 심정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인체 유해 가능성 등 성주 군민들이 걱정하는 문제들에 대해 사드 배치 결정을 전후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어린 학생들의 사드 반대 시위 참여는 씁쓸함을 남긴다. 온갖 괴담이 난무했던 2008년 광우병 시위처럼 변질되는 것 아니냐고 벌써 걱정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가 외부 시위꾼의 배제를 요구하고 평화시위를 선언한 것은 진지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폭력시위 대신 평화시위를 결단했으니 내친김에 사드 문제는 어른들이 책임감 있게 풀어가면 어떨까.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뜻도 모르는 전단을 돌리는 초등생은 이제 다시 교실로 돌려보내자.

김윤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