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 지도는 학생 위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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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기 대학의 입시원서 접수 마감이 박두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선택하느냐를 놓고 지금 갈팡질팡하고 있다.
예년처럼 학력고사와 내신 성적만으로 결정할 수 있으면 모르되 금년부터는 논술고사가 변수로 등장, 선택에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입시에 관한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고 나름대로의 전문가들이 이런 저런 방향제시는 하고 있으나 판단 한번 잘못하면 자녀의 일생을 그르칠지도 모를 함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당사자들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진로 선택이 어려울 때일수록 상담 상대로서 의지가 되는 것은 당연히 학교의 담임 선생들이다.
한데, 입시 원서를 써 주면서 그 담임 선생들이 학교나 자신의 입장에만 집착한 나머지 학생들의 적성과는 관계도 없는 대학 선택을 강요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대학교에 몇 명을 넣느냐가 고등학교의 성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임은 다 안다. 서울에서만 해도 50명 이상은 넣어야 이른바 명문고 축에 끼게 되어있다. 일류 대학 진학 생을 많이 낸 교사에겐 「명」만 아니라 「실」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 때문인지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상위권 수험생들이 서울대 지원을 하지 않으면 원서를 써 주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가령 연대나 고대 같으면 원하는 대로 학과 선택을 할 수 있는 학생들에 대해 서울대의 적성에도 맞지 않고 원하지도 않는 학과를 지원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원서를 써 주도록 한 현행제도의 맹점을 이용해서 부리는 횡포다.
법과 지망에, 제2 외국어로 일어를 선택한 학생에게 서울대 독문과나 심리학과를 지원하지 않으면 원서를 써 주지 않는다고 할 때 당사자들이 느낄 당혹 감은 어떻겠는가.
이렇게 무리를 하면 학교나 교사의 명예는 드높일지 모르지만 수험생들의 고통은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연장된다.
적성과 관계없는 학과에 들어간 학생들이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재수 궁리나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심한 경우 노이로제 등 정신질환 증세마저 보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학교, 원하는 학과에 갔더라면 상위권 학생으로 네 활개를 치면서 공부할 학생들을 자기네 학교나 교사들의 욕심 때문에 그르치게 한다면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입시 원서를 출신학교에서 써 주는 제도는 이중, 삼중 지원에서 오는 혼란을 피하자는 데 뜻이 있지, 수험생의 진로를 좌지우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의 장래는 궁극적으로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래야만 설혹 잘못 되어도 그 원망이 딴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른바 「일류」, 「명문」이란 성가를 얻으려 제자들의 장래를 잘못되게 했다면 그 교사들을 누가 훌륭한 스승이라고 부르겠는가.
고교의 진학 지도는 오히려 하위권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마땅하다. 이 경우 교사의 한마디 조언은 천만금의 중요성을 띨 수도 있다. 그 중요성은 상위권으로 갈수록 엷어지는데도 제 갈 길을 찾을 수 있는 상위권 학생들의 진로 문제에만 유독 관심을 갖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입시 전문가들은 학교보다는 학과 선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들 충고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선택할지 고민중인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한번쯤 되새겨 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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