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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8호 4 면

‘연극계의 어벤저스’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햄릿’이 막을 올린 12일 저녁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국가대표 연극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셰익스피어의 예술혼으로 충만했습니다. 무대?위에 마련된 그리스식 야외 무대를 떠올리는?특설 반원형 객석에 올라가 앉을 때부터 기대는 시작됐죠. 아무 설비도 없이 평평한 바닥 뿐인 무대는 이 작품을 만들어낸 제작진의?자신감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습니다. ‘무대는 없어도 돼, 우리는 연기로 승부할거야.?우리는, 최고의 배우니까-.’


두건 차림으로 홀연히 나타난 아홉 명의 배우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전무송·박정자·손숙·정동환·김성녀·유인촌·윤석화·손봉숙·한명구라는 아홉 이름은 12세기?덴마크 왕실을 배경으로 벌어진 인간의 욕망과 갈등과 복수의 현장을 절절하게 구현해 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혹시 대사를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은 공연한 것이었습니다.


총 150여분의 숨죽이는 시간을 지나 모두 빛속으로 걸어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후련한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공연은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p.s. 왕비 옆에 숨어있던 폴로니어스가 햄릿에게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순간, 폴로니어스역을 맡은 박정자 선생님은 단말마의 비명을?지릅니다. “이게 아닌데-.” 그 웃기면서도 슬픈 대사가 이상하게 머릿속을 떠나질 않네요.?모쪼록, 이게 아니지 않기를.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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