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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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기2000년 고지를 향해 뛰는 세계 각국의 경제 레이스 (경주)는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쁘다.
우리도 연초에 KDI (한국개발연구원) 가「2000년을 향한 국가장기발전구상」을 발표했는가 하면, 이웃 일본도 최근 노무라 (야촌) 종합연구소에 의해「10년후 세계 경제와 일본 경제의 장기전망」을 발표했다.
그런 가운데 소련의 2000년 경제 청사진을 들여다 보면 어이없는 항목이 많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취임이후 집념처럼 경제개혁을 부르짖는「고르바초프」가 최근 소련국민들에게「꿈같은 미래」로 약속한 15년 후의 생활수준이라는 것이 고작 라디오는 20명에 1대씩, 카세트 레코드는 40명에 1대씩이다. 그리고 현재 6페이지짜리 프라우다지는 10페이지로 늘어난다.
이 청사진에 따르면 소련은 2000년까지 국민소득과 공업생산은 2배, 노동생산은 2.5배로 늘리도록 되었다.
그러고 보면 세계 GNP통계에 실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소련의1인당 GNP는 현재 2천2백68루블 (2천3백달러=독일 슈피겔지 보도) , 2000년에 가도 4천6백달러 수준이다. 현재 미국의 영세민 하한선인 1만8백62달러에 비하면 4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KDI의 구상을 보면 한국은 그때 가면 1인당 GNP가5천1백3달러가 된다. 선진국수준인 1만3천8백92달러에는 못미치지만 개도국의 평균치 1천1백63달러보다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 83년 한국의 1인당 GNP는1천8백80달러로 동구권을 제외한세계 1백18개국중 40위를 차지했다.
어쨌든 소련 경제는 그 막강한 군사력에 비해 국민의 일상생활은 말이 아니다.『토마토를 사려고 4시간30분 줄을 섰더니 겨우 조그마한 사과쪽만한 것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신문 독자기고가 그 심각성을 잘 말해준다.
83년「안드로포프」는 집권하자마자 침체에 빠진 소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3대 사회악인 과음, 결근, 부패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필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만성적인 소비재와 식품부족으로 노동자들의 사기를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해서 어렵게 돈을 벌어 봐야 살 물건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축 늘어진채 술과 나태와 부정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그래서「안드로포프」는 당근 (회유)과 채찍 (위협) 의 양면정책을 썼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국민의 안온한 생활을 외면하는 경제발전이란 무의미한 것이며, 결코 선진국일수가 없다.「군사대국」보다 차라리「복지소국」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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