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이른시간 출근 중 교통사고…법원 “업무상 재해”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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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이른 새벽 출근길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될까.

법원은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출근 시간에 교통사고가 난 경우 업무상 재해로 봐야한다”고 판결했다.

박모씨는 전남지방경찰청 112 종합상황실장으로 근무하며 주중에는 근처 관사에서 출ㆍ퇴근을 했다. 주말에는 자택으로 퇴근했다가 월요일에 다시 출근하곤 했다. 2015년 6월 14일 일요일 자택에 머물던 박씨는 그날 저녁 오후 10시경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챙길 일이 있다”며 길을 나섰다. 그는 자신의 SM5 승용차를 몰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렇게 자정을 넘겨 다음날인 15일 월요일 새벽 3시경쯤 박씨는 가드레일에 차량을 들이받고 뒤에 오던 화물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박씨 부인 배모씨는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청구를 했지만 공단은 “망인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배씨는 “남편은 근무지로 출근하던 도중에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연금공단의 처분은 위법”이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배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병수)는 “연금공단이 배씨에 대하여 유족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여러 가지 상황과 폐쇄회로(CC)TV에 나타난 자동차의 이동경로를 살펴봤을 때 이 사고는 박씨가 자택에서 근무지까지 통상적인 경로를 따라 출근하던 중 발생한 것으로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망한 시간이 평소 망인의 출근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빨라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처분에 대해서도 “당시 경찰청장으로부터 내려진 ‘메르스 관련 지령’으로 인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공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일반적으로 통상적인 출ㆍ퇴근길에서 발생한 재해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게 기본적인 대법원의 판례다. 특히나 사기업의 경우 더 인정받기 힘들다. 법원 관계자는 “공무원에 비해 일반적인 사기업 직원의 경우에는 더욱더 적용 기준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통근 버스가 없는 날 개인용 자전거로 출근을 하다가 승용차에 치여 부상을 입은 사기업 직원 A씨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출퇴근은 업무의 연장이 아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도 자전거를 이용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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