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서정록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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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北學派) 학자 연암 박지원과 이덕무는 고려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을 매우 존경했다. 최고 수준의 작품성 때문이기도 하지만,조선의 어떤 지식인도 체험하지 못한 중국 대륙의 장쾌한 여행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이다. 익재의 뛰어난 문학을 배태한 것은 그의 장유(壯遊)라고 그들은 믿었다.

익재는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정치가요, 문인이며 역사가다. 원(元)의 화가가 그린 그의 초상은 국보 110호다. 그의 삶과 문학은 고려의 역사와 문학에 너무도 큰 비중을 갖고 있다.

몽골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에 고려는 원에 복속됐고, 고려왕은 자주 원의 수도에 머물렀다. 충선왕은 연경에 만권당(萬卷堂)을 설치해 학자 문인들의 교류의 마당을 만들었다. 익재는 고려를 대표하는 학자로 부름을 받아 조맹부 등 명망 있는 학자와 교류했다.

여기서 익재는 1316년 원 황제의 명을 받아 아미산에 제사를 하기 위해 여행을 했고, 1319년에는 강향(降香)하는 충선왕을 따라 보타산에 갔으며, 1325년에는 북경에서 4천2백km 떨어진 티벳 사캬로 유배간 충선왕을 맞이하기 위해 도스마를 여행했다. 조선의 지성인으로서 그처럼 장유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여행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중문학자 지영재 교수의 '서정록을 찾아서'는 바로 이 세 차례의 여행을 중심으로 익재의 시와 삶을 규명한 책이다. 익재의 시 가운데 '서정록'(西征錄)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여행한 곳이 중국 서남부인 아미산과 보타산.티벳 등이기 때문이다.

지 교수의 저술은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첫째, 익재가 이 여행에서 남긴 시를 나침반 삼아 그의 행적을 샅샅이 뒤졌다. 현장답사를 통해서 익재 시에 대한 현장적 이해를 높였다.

둘째, 원대의 역사를 통해서 익재의 삶과 시의 의미를 해명했다. 이를 통해 팍스 몽골리아나 체제 하에서 고려의 주권을 보전하기 위한 지식인의 노력을 규명하였다. 셋째, 7백년 역사의 변천을 통해 중국 산하유적의 변화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지금까지 잘못 이해된 사실을 새롭게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지 교수는 익재가 남긴 시가 한편으로는 서정시지만 '서정록' 전체는 서사 구조를 가진 여행기라고 보고 그 여행을 재구성했다. 심지어 지 교수는 익재의 여행을 작시(作詩) 여행의 성격으로 보기까지 한다.

이 책은 고전을 현대화하고 현장답사를 겸비한 작업이다. 저자는 7년 간에 걸쳐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역사적 비중을 가진 익재에 관한 변변한 전기조차 없는 현실에서 이 저술은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하리라고 믿는다.

안대회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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