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론이 득세하는 정치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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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협상을 하자는 쪽을, 온건파, 깨자는 쪽을 강경파라고 한다면 우리정계에서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요즘 여야가 벌이는 협상은 모두깨어진다. 지난번 예산파동 직전의 여야협상은 거의 다 될뻔했는데 야당강경파 때문에 깨어졌다. 이번에 국화정상화 협상도 거의 될듯했는데 주로 여당 강경파때문에 깨어진듯이 들린다. 그에 앞서 개원국회의 사면·복권협상도 깨어졌고 정기국회 중간에 법어진 부의장선출파동도 타협이 안돼 야당이 독자등원했다.
올해들어 여야간에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립과 대결이 더 많았고 그저 학원안정법파동만이 대화의 견물로 좋은 모양으로 수습됐다.
이렇게 본다면 강경파가 시종 우세했음을 자연히 알수있게 된다.
어느 시절, 어느 정치집단에서건 강경파·온건파는 있게 마련이다.
강경론은 흔히 원칙과 법을 내세우고 선명을 강조하는 반면, 온건론은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고 여론을중시한다.
회의에서 강·온이 맞붙으면 대개강경론의 목소리가 크다. 무엇보다 강경론은 용기가 있어보이고 일관성이 있어보인다. 온건론은 타협과 대화를 주장하다보니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게되어 음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경론은 비록 소수라도 발언권이 크고 대세를 휘어잡기 쉽다.
올해 우리 정치는 민정·신민당간의 격돌의 정치였다고 한마디로 말할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강경·온건론간의 갈등의 한해였다고도 할수있다.
올해 정국을 뒤흔든 선거후의 사면-권협상·학원법파동·고대앞사건·국회부의장파동·헌법관계특위협상과 예산파동등의 배후에는 언제나 강·수의 두 흐름이 있었다.
여권의 강경론은 사면·복권을 반대하고, 학원법을 추진했으며, 고대앞사건을 사법화하고 헌법관계특위는 받아줄수 없다고 나왔고 예산안은 단독강행했다.
야권의 강경론은 조기등원을 반대했으며, 수시로 등원거부를 주장하고헌법특위에「연구」 가 붙으면 안된다고 나왔다.
오늘날 나타난 결과를 놓고보면 강경론은 온건론에 대해「대승」을 거둔 셈이다. 중요한 협상이 결렬되고 헌법특위는 재론의 소지가 거의 없어져 버렸으니까.
왜 이처럼 강경론이 득세하게 됐는지는 생각해 볼일이다. 손쉬운대로 따져보면 우선 강경론은 여야를 막론하고 하기가 쉽다.
강경주장을 펴면 소신있어 보이고 당성·충성심이 확고해 보여 웃사람이나 당내로부터 시비가 걸릴 위험부담이 적다. 야당의 경우 특히 강경은「선명」과 통하고「선명」은 인기와 직결됨으로써 다음 선거를 의식할수록 강경은 유행이 되기 쉽다.
반면 온건론은 여론을 의식하고 상대방과 타협을 하자니 줏대가 없어 보이고 또 협상의 결과가 반드시 자당의 득으로만 끝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크다. 왜 너무많이 줬느냐, 그런 중요한 것까지 왜 줬느냐는 시비가 항상 따라붙기 쉬운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강경보다는 온건이 더 용기와 소신을 필요로 하는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정치가 간부정치라는점도 강경론득세의 한 원인이 아닌가 한다. 평의원·당원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치를 한다면 매사 강경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실제 학원법파동이나 헌법관계특위 협상때 보면 의외로 많은 평의원들이 온건론을 갖고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야의원들이 서로『사석에서는 합리적이던데…』라고 상대방을 평가하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바탕에 깔린 이런다수의 의사는 대체로 당론결정에 별 영향을 못미치는것 갈다. 간부들끼리 결정한 당론에 따라 전소속의원이「단독」에도 가담하고「행동」에도 앞장선다.
이밖에도 리더십의 개성이나 우리풍토등 여러가지 까닭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런 강경론의 결론이 요즘의정기국회의 모습이라면 할말이 없다.
여야간의 대화는 끊어지고 3분의1이 넘는 의원이 국회를 거부하고 있다. 정치의 내일의 모습을 짐작할길이 없다.
강경론 역시 협상이 결렬되면 정치가 어떤 모양이 될는지는 미리.부터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겪은후의 정치전개에 대한 강경론 나름의 정치 청사진을 제시해야할것이다.
『이러 이러한 좋은걸 하자니 협상을 깰수밖에 없었다….그러니 이 과정은 좀 참아달라』 는 식의 화법으로 강경론 나름의 대안을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대안을 추진하는과정에서는 강경론도 온건론으로 전신해야 마땅하다. 훌륭한 대안이라면상대방을 납득시키려 들것이고 납득시킬 자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우리 정계의 강경론은 대안있는 강겅론이었는가. 혹 강경론만 만병통치약으로 나온 일은 없는가.
침묵하는 다수 의사를 더러 무시하면서까지 강경으로 강경으로 달려온85년정국도 좀더 있어보면 활짝 옷을결과를 보여줄수 있다는 청사진을 내지 못하는 이상 올해의 강경론은 그냥 가장 하기 쉬운 안이한 길이였기때문에 또는 처신에 가장 안전했기때문에 나온 것이었다는 비판만을 듣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런 청사진이 없는 강경론이라면 새해부터는 좀 소리가 낮아지고 대신 온건다수세의 정치가 전개되길 바라야 할 것이다. 송 진 혁<본사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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