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판 행사」의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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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가을 우리는 TV화면에서 두가지의 상극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선 벼가 물에 잠겨 추수걱정이 태산같은데, 다른 한쪽에선 고깔쓰고 북치고 피리불며 노라리판이 벌어진다.
도대체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잔치판 행사들이 무엇 때문에 벌어져야 하는지 영문을 모를 정도였다.
정부는 때마침 정부주관 각종 행사의 규모를 간소화하고 인원동원과 행사경비 모금등도 억제키로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회있을 때마다 관이건, 민간이건 간에 영문도 모르는 잔치판 행사를 남발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뒤늦게 정부가 자진해서 행사의 규모와 횟수를 줄이기로 한 것은 앞으로 민간단체나 기관의 행사에도 영향을 미칠것이란 점에서 좋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관이 주도한 행사는 외화에만 치우쳐 이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낭비적 행사가 국민전체에 미치는 호화·사치풍조의 조장은 결코 무시할수 없다.
또한 인역과 시간의 낭비는 얼마며 1년내내 거의 그칠 날이 없는 각종 크고 작은 행사에 동원된 국민들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에너지 소모는 또 얼마였던가.
바쁜 농사일을 제쳐놓고 마을이나 읍· 면 행사에 불려나온 농민들, 학업을 전폐하고 식장이나 가석에 동원돼 깃발을 흔들어야 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 동마다 뽑혀나와 행사장을 메우는 도시민들.
이들은 넓은 행사장을 장식해야 했고, 그런 이유로 생업과 학업에 받는 손실은 적지않았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행사동원은 학업의 지장은 물론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면도 없지 않았다.
체전개막식에서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빗속에서 흠뻑 젖은채 매스게임을 강행했던 여학생들이 집단으로 감기를 앓은 사건들은 대표적인 예다.
정부의 이번 행사억제 방침은 발표에 그칠 일이 아니라 꼭 실천돼야한다.
과거에도 수차례 이러한 방침이 발표됐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부의 결단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며 외화 뿐인 잔치판 행사로 국민의 세금과 인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 기회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당일의 행사 뿐만 아니라 하루 몇시간의 행사 준비로 어린 학생들이 수십일 혹은 수개월씩 학업을 폐지하고 연습에 동원되는 일도 다시 없기를 당부한다.
이러한 행사간소화 방침은 앞으로 있을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형펀은 국제행사에 풍족한 예산을 풀어주기는 힘들다.
따라서 우리 실정과 분수에 맞게 조촐하게 치르면 된다.
오히려 그것이 세계인에겐 호감을 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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