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만으론 안되는 「새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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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85년12월2일상오7시4분 국회의사당 146호실은 숨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년도 예산안과 조감법등 8개안건이 1백45명의 민정당의원들에 의해 단독통과되는 방망이가 숨가쁘게 두들겨지고 모든것이 끝났다.
그러자 10여명의 의원들이 『잘했어』라고 외쳤고 박수도 나왔지만 회의장은 곧이어 납덩어리가 짓누른듯한 적막감.
잠시후 이같은 적막감은 출입문을 깨는 「꽝꽝」소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장내분위기는 한층 긴장으로 치달았다.
드디어 일단의 신민당의원들이 문을 깨고 들어오자 장내는바로 목불인견의 수라장.
이 수라장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문득「새시대 새정치」라는 귀에 익은 구호와함께 「구태」라는 말을 떠올리게됐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광경이 「새정치」와 「구태」와는 어떤관련이 있는가.
지난 약5년간 우리 정치의캐치프레이즈처럼 된 「새정치」가 마침내 한계를 드러내고 그토록 타매해 마지않던 「구태」로 되돌아 가는 것인가 하는순식간의 느낌음 지울수가 없었다.
이번 사태를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구태」로 충만해 있음을 쉽게 알수있다.
「구태」의 특징적 현상들로 곧잘 지적돼온 농성·극한투쟁·흑백논리·단독등이 모조리나타났고, 기물파괴·폭행·욕설·뒷거래세등도 푸짐하게 쏟아WU 나왔다.
이런현상을 「새정치」라고는 도저히 할수없고 굳이 명명한다면 신「구태」라고나할까.
결국 이번 사태는 새정치가 구호로는 정착될수없고 실천의지와 실천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한쪽은 구태로, 다른쪽은 새정치로 나올때 그 대비는 지극히 선명해질 수 있다. 그러나 구태를 새정치로 대응하는데는 큰고통이 따를것이다.
그런 고통의 인내없이는 새정치는 어려울 것이다. 고통을참으며 새정치로 가느냐, 편한대로 구태를 답습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이번 사태는 후자를택한 결과가 아닐까.
나쁜것이 줄어들고 좋은것이많아지는 것이 발전이라면 우리정치는 발전이가 후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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