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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사13살 때 고르바초프만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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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부인은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크렘린의 터부를 깨뜨린 여자-「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부인「라이사」여사의 사생활이 최근 서독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공개됐다. 다음은 이기사를 간추린 내용.

<서독 슈피겔지 사생활 공개>
의사직업을 가진 32세의 딸과 6세짜리 손녀딸이 있는52세의 할머니「라이사」는 실제 나이보다 10세가량 더 젊어 보이고 54세의 남편「고르바초프」보다는 20세가량더 젊게 보인다.
굽높은 부츠를 즐겨 신고 황금 목걸이·귀걸이를반드시 달고 다니는「라이사」가 처음 서방세계에 등장했을때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지는「다이애너」황태자비에 대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다.
푸른 눈을 갖고 카메라앞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는「라이사」여사는 제정러시아시대 귀족집 딸처럼 교양을 쌓았을뿐 아니라「심오한철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갖고 모스크바대학의 교수직도 갖고있다.
이따금「고르바츠프」의 연설에서 전임자와 달리 철학적 용어가 틔어나오는것도 분명히 「라이사」덕분이다.
「고르바초프」의 이 여자철학선생님도 상아탑에만 머물러 있는게 아니다. 여느 여자와 마찬가지로 서방세계에대해 호기심이 많으며 안락한 생활을 동경한다.
「고르바초프」가「라이사」를알게 된것은 어렸을때. 2차대전직후 고향 프리볼노예에서 트랙터운전을 하던 15세때 그는 13세의「라이사」를만났다. 굶주림으로 허덕이던1946년 수확하고 남은 이삭을 주으러 왔다가 만났다.
양친이 모두 박사학위를가진「라이사」는 당시 주미소련대사였던「안드레이·그로미코」의 조카딸이라는얘기도 있다. 금년3월「그로미코」가「고르바초프」를 당서기장으로 추천한것도 이런 인연으로 설명할수 있다.
시골구석의 처녀가 모스크바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할수있었던 것이나「고르바초프」가 입학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같은 모스크바대학 법학과에서 공부할수 있었던것도 모두「그로미코」의 덕이었다.
당시 마치 프랑스여배우처럼 보였던「라이사」는 철학공부를 남보다 빨리 마쳤다. 외국어는 영어를 택했다. 졸업후 변증법적 유물론강좌를 맡았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청년동맹의 학생간부로 활약하느라 시험공부는 좀 게을리했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두사람은 결혼했다. 이듬해 21세의「라이사」는 딸「이리나」를 낳았다.
젊은 부부는 모스크바의 한 모퉁이에 조그마한 집을마련, 「라이사」는 여기서『우수함』으로 평가된 학외논문을 마련했다.
「라이사」는 이집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마늘을 듬뿍넣은 요리를 해주곤했다.
「고르바초프」가 백화점에서 긴 행렬에 끼어 섰다가 옷감을 사오면「라이사」가 옷을 만들어 주기도했다.
모스크바에서 5년 보낸 뒤 일가는 고향으로돌아가「고르바초프」는 공산당조직에서 일하고「라이사」는 박사논문을 끝냈다. 「고르바초프」일가는 여기서 25년을 지냈다. 「고르바초프」는 휴양지로이름난 이곳에서 요양하러온「안드로포프」를 알게돼 47세가 되던 1978년 모스크바의 당중앙위로 진출하는 계기를 잡았다. 「라이사」도 모스크바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강의를 맡게됐다.
모스크바에 온지 4년만에 그들이 차지하게된 70평짜리 아파트에는 핀란드가구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관계없는 그림 페르시아카피트, 고전음악 레코드로 그득하다. 「라이사」는 작가와 예술인들을 집으로 초대, 파티를 즐기곤한다.
「라이사」교수는 은행구좌잔고와는 상관없이 4백달러짜리 옷을 마음껏 사입고 시베리아견 모피로 소련의 일류 디자이너에게 옷을 마춰입는다. 향수는「이브·생·로랑」의 오피움을 즐겨쓴다.
물건값이 국고에서 지불되는것은 물론이다.
「고르바초프」가 1975년 서독을 여행했을때 그는 숙박료 1만원짜리 호텔에서 묵었다. 그러나 지난해12월「라이사」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숙박료 60만원짜리 호텔에 머물렀다.
부부는 공산당지도자론 반드시 참배하는「마르크스」묘지방문예정을 취소하고 보석상을찾았다. 「라이사」는 구치 핸드백을 사고 6살짜리손녀딸을 위해 80만원짜리 옷을 샀다.
「대처」영국수상의 귀걸이를보곤 어디서 산것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대처」수상은 약간 비꼬는듯한 어조로『어느 상점에가든지 다있다』고 대답했다. 「라이사」는 곧상점을 찾아가「대처」수상것과 똑같은 귀걸이를 샀다. 동행했던 소련외교관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로 2백만원을 지불했다.
지난10월 파리를 방문했을때「라이사」는 소련의 유행에 따라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했다.프랑스신문들은 예의바르게『딸기색깔의 금발』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굽높은 구두에 황금빛 야회복을입고 엘리제궁 파티에 나타난것을 두고『모스크바식 잠옷』이라고 혹평했다.
똑같은 옷을 두번 입고나온것을 두고 한 방송은 영국의「다이애너」황태자비도 똑같은 옷을 두 번씩 입은 일이 있지만『2년만에 갈아입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미테랑」대통령부인은 눈치빠르게 자기도 다음날 똑같은 옷을 두번 입고「라이사」를 맞이했다.
「라이자」는 파리에서 45분가량 미술관에서「마네」「르느와르」「고호」의 그림을보곤 『나체화가 많을줄 알았다』고 감상을 말하기도했다.
패션쇼는「피에르·카르댕」과「이브·생·로랑」의 쇼를 두번 구경했다.
「피에르카르댕」의 아틀리에에서「라이사」는『소련여성은 이제 호사스러움을 받아들일태세가 준비돼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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