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보여주는 정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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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람의 정치성향을 분석하는 간편한 도식적인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현실에 대한 만족여부와 장래에 대한 전망에 따라 사람의 정치성향을 4대별 하는 방식인데, 이를테면 △현실에 만족하고 장래를 낙관하면 자유주의자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장래를 낙관하면 급진주의자 △현실에 만족하면서 장래를 비관하면 보수주의자 △현실에 불만하면서 장래도 비관하면 반동주의자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전문화된 사회에서 이런 간단한 정치성향의 분류라는 것이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런 설명이 정치에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같다.
현실에 불만을 품는 급진주의·반동주의가 판을 치면 정치·사회적 불안과 혼란이 오기 쉽다. 장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하고 비관으로 흘러도 보수와 반동의 세력이 강해져 발전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
이상적인 상태는 현실에도 만족하고 장래도 낙관하는 자유주의자가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치가 할 일은 뻔하다.
「만족」과 「낙관」의 조성·공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는 「만족」과 「낙관」을 얼마만큼 공급하고 있는가.
최근 우리사회를 보면 울적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고용이 안되어 실업자가 늘고있다고 하고, 우리경제를 크게 좌우하는 수출도 계속 벽에 부닥친다는 얘기다. 앨범에 대한 반덤핑관세율은 그토록 부당함을 외쳤건만 64%라는 고율로 확정되고 말았다.
학생데모가 더욱 격렬해져 1백91명이나 한꺼번에 구속됐는가하면 국회답변을 듣고나서는 농촌에서도 그렇게 시위가 있었던 것을 비로소 알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외채는 많다는데도 시원한 감축방안은 들리지 않고 큰 돈이 들어야 해결가능한 공해문제, 부실기업문제, 미임용교사의 적체문제…등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쌓여있다.
정치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이처럼 많은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적절히 해결되는 실적과 적절히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정치에 의해 제시돼야 「만족」과 「낙관」의 공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급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수요는 더욱 커지고 급격해 진다는 점에서 때를 잃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정치는 그 깊은 속은 알수 없으되 겉으로 보기에는 울적한 요인의 해결보다는 그자체가 하나의 울적한 요인이 되고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총리출석문제로 예결위가 나흘이나 공전하고, 국회가 열리기만 하면 「수위높은」발언, 저질 발언으로 시끄럽다.
장관이 나와야 한다, 안나와도 된다로 시비하기가 일쑤요, 답변이 실하지 않다고 매양 시끄럽다.
이래 가지고는 「만족」과 「낙관」공급은 커넝 「불만」과 「비관」을 심화시킬까봐 걱정된다.
총리가 예결위에 나가 답변못할 이유도 없거니와 총리가 없으면 질의를 못한다는 주장도 논리가 안선다. 부총리나 장관들이 도저히 답변할 수 없는 정치문제를 물어서 누가 보더라도 총리가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당이 정치공세를 한다니까 총리출석은 안되겠다는 것도 듣기 거북했다. 국회에서 정치를 안한다는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저질발언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일이다. 도대체 국민을 지도하는 선량들에게 한다는 충고가 『예의를 지켜라』 『시정잡배처럼 국회에서 욕지거리를 하지 말아라』 『싸우지 말고 대화로 해나가라』…따위가 돼서야 말이 되겠는가.
행정부측도 하루 이틀도 아니게 『답변을 성실히 해라』는 말을 여러십년 듣고 있는대서야 말이 안된다.
이처럼 너무 쉬운 문제부터 정치가 틀려대고 있으면 그런 정치의 해결능력을 누가 기대할수 있겠는가.
정치에 대해 체념하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극단적인 해결방법이 추구되기 쉽다. 정치에서보다는 집단행동으로, 「빽」을 동원해서 해결을 모색하려는 성향을 조장하게 되고, 이런 정치가 아닌 다른 정치에 대한 희구나 충동을 자극하게 됨으로써 현실정치의 기반은 더욱 약화된다고 볼수 있다. 벌써부터 세간에는 이러저러한 「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가증되고있는 「불만」과 「비관」의 흐름이 더 커지지 않도록 쉬운 문제부터 정답을 보여주는 정치가 나와야겠다.
산적한 문제에 당장 해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팔을 부르걷고 문제를 풀어보려 한다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정치란 것이 무슨 사고 파는 물건과 같아서 싫으면 안사도 되고, 싫다고 피해 살아갈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기처럼 싫어도 그 시절 그정치의 치하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다.
정치에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는말이 관청 주변에서 더러 나오기도 하지만 정치라는 바다가 출렁이면 민생의 조각배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만족」과 「낙관」을 어떻게 공급할지 정치가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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