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시리아 난민에게 시민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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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사진) 터키 대통령이 시리아 난민에게 터키 시민권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터키 남부 킬리스를 방문한 에르도안은 시리아 난민과 함께 한 라마단 저녁식사 중 “내무부가 시민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킬리스엔 12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살고 있다. 현지 주민보다 많다.

270만명 거주…자격 조건 등 안밝혀
터키 야당 “2019년 선거 겨냥한 것”
국적 취득 땐 이동 쉬워 유럽도 촉각

이날 에르도안은 “오늘 밤 전해줄 좋은 뉴스가 있다”며 “여러분 중 터키 시민권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한다면 터키 국적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분을 형제 자매로 생각한다. 터키는 여러분의 고향이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는 270만 명에 이르는 터키 내 시리아 난민 전부가 시민권 부여 대상인지, 자격 조건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에르도안의 발언에 유럽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리아 난민이 터키 국적을 얻을 경우 유럽으로 이동하기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터키와 유럽연합(EU)이 체결한 난민송환협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양측은 터키가 난민 유입을 차단하는 조건으로 EU가 비자 면제와 경제 지원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터키 정치권도 에르도안의 약속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터키 정치평론가 무스타파 아크욜은 알자지라에 “인도적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정치·경제적 이유로 터키에 온 다른 외국인도 있는데 시리아인에게만 시민권을 준다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타문화 출신의 다른 언어 사용자들을 통합시키는데 드는 경제적 부담이 엄청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에르도안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행 불가능한 약속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터키 야당인 공화인민당 측은 “제안 대로라면 2019년 선거에서 100만 명 넘는 새 유권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래 국경을 넘어온 시리아인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에게만 노동 및 거주를 허가했다. 그러나 난민들은 터키 경제에 활력이 되고 있다. 30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의 경제 활동 덕에 터키 경제는 올해 1분기 4.8% 성장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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