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도전은 계속된다… 가족 잃은 산악인들 등정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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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98년부터 탈레이사가르 북벽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등반가 3인의 높은 이상을 이번 원정을 통해 고이 모셔올 생각입니다."

인도 북부 가르왈 히말라야산맥의 강고트리산군에 있는 험봉(險峰)인 탈레이사가르봉(해발 6천9백4m)을 등정하기 위해 다음달 11일 인도 델리로 출국하는 '2003 한국 마운틴하드웨어 탈레이사가르 원정대(단장 손중호)'.

이번에 등정에 나서는 산악인들은 98년 9월 탈레이사가르봉 등정에 나서 험난하기로 유명한 북벽으로 향했다가 정상을 1백m 앞두고 발을 헛딛는 바람에 추락해 숨진 산악인 김형진(25.당시 나이).신상만(32).최승철(28) 씨의 가족과 동지들이다. 이들은 3년 전 이번 원정을 구상한 뒤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탈레이사가르봉은 '악마의 붉은 성벽'이라고 불릴 만큼 이제껏 도전에 나선 등반대 가운데 10%에게만 정상을 허락한 고난도의 봉우리.

국내에선 울산대팀이 2000년 한국 산악 사상 처음으로 아홉 차례의 도전 끝에 정상에 올랐지만 비교적 쉽다고 알려진 북서릉을 통한 등반이었다. 국내 산악계는 98년 사고 당시 한국 등반역사가 5년 이상 후퇴했다며 매우 슬퍼했다.

이번 원정대의 홍일점인 식량 담당 김점숙(36)씨는 당시 원정대원이었던 고(故)최승철씨의 미망인. 암벽 등반을 하다 만나 96년 결혼한 두 사람은 98년 초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하는 미국 동계 X-게임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함께 빙벽을 타기도 했을 정도로 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부부였다.

숨진 崔씨는 97년 파키스탄 그레이트트랑고에 '코리아 팬터지'라는 새 루트를 개척했고, 부인 金씨는 99년 미 동계 X-게임에 다시 출전해 아이스클라이밍에서 은메달을 땄다.

원정대의 행정.수송을 맡은 김형철(36)씨는 김형진씨의 친형으로 동생이 죽기 전 사이좋게 산을 탔던 기억을 잊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장을 냈다. 원정대장인 이상조(52)씨 역시 최승철.김형진씨와 그레이트트랑고에서 새 루트를 개척한 인연을 갖고 있다.

회계.기록 담당 모상현(30)씨는 97년 신상만씨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를 올랐다. 장비 담당 장기헌(34)씨도 고인들과 함께 탈레이사가르봉 원정에 나섰다가 혼자 살아와 그동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원정대는 다음달 26~27일 사이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9월 9~10일 1차 등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대원들은 98년 원정대가 시도했던 같은 코스를 따라 신루트 개척에 나서게 된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직 등반 코스만 무려 1천5백m에 달해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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