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재의 건널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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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9일 서울구로구 경인선 철길에서 일어난 일가 4명의 건널목 참변은 같은 유형의 사고 반복이라는 점에서 국민과 교통당국에 다같이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올해 들어서 만도 무려 5건의 똑같은 건널목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5명이 숨진 장소다. 이곳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보기나 차단기가 없는 이른바 제4종 건널목이어서 항상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고 실제로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 곳이었다.
철길이 S자로 굽어 있어 멀리서 달려오는 열차를 어지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전혀 사전에 감지할 수 없는 지형적 취약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최근에는 근처에 집단주거인 빌라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시계차단이 더욱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상주인구도 6백여 가구나 늘어나 이 건널목에 대한 주의와 관리가 절실했던 것이다. 물론 사고의 1차적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건널목을 건너려면, 더구나 어린이들이나 이들을 동반했을 때에는 상하행선을 세심히 살피고 시계가 차단돼있을 경우에는 더욱 청각에 신경을 집중시켜 열차의 진동음을 확인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그토록 세심한 걱정이나 사전 대비에 완벽하지 못하다.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사전주의를 기대할 수 있다면 전국적으로 건널목 간수를 두고 차단기를 설치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불완전하고 실수하며 부주의하여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 불완전과 실수를 사전에 예방하고 경고하는 것이 행정이고 정치이며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건널목 사고의 책임도 행정당국에 당연히 물어야 한다.
우선 S자로 커브가 지고 인구가 밀집돼 있는 주택가의 철길 건널목을 간수나 차단기 하나 설치하지 않고 방치해 둔 당국의 처사는 이해가 안 간다. 더구나 올해만도 이미 5명이 같은 장소에서 참변을 당했는데도 그대로 보고만 있었으니 이는 당국이 위험과 피해를 뻔히 알면서도 사전·사후조치를 등한히 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문책되어야 한다.
이 지역에 공동주택을 지어 분양한 건설회사측이 육교를 세워주기로 약속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나, 육교를 세우거나 차단기를 설치하거나 건널목관리는 어디까지나 교통당국의 책임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어찌 건설회사나 주민에게 넘길 수 있겠는가.
전국에 있는 2천2백여 철도건널목가운데 52%가 넘는 숫자가 경보장치만 있거나 경보장치도, 차단기도 없는 3, 4종 건널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난 철길사고는 83년의 경우만 해도 1백30여건에 이르고있다. 사고원인별로 보면 자동차의 운전부주의가 59·3%, 경운기와 오토바이가 30·2%, 자전거·손수레가 10·8%, 그밖에 보행자의 부주의가 0· 7%로 나타나 있다. 자동차가 늘고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도시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운행과 통행이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사고의 위험도 전보다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이에 따른 사전 예방조치도 일층 강화되고 보완돼야 한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3,4종 건널목에 대한 점검을 새로이 하여 상황과 여건의 변화에 따른 보완을 서두를 것을 교통당국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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