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 비상경계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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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세기 최후의 질병으로 일컫는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비상경계령이 서울에도 내려졌다. 서울시가 외국인 상대 업소가 밀집돼 있는 이태원의 유흥업소 종사자중에 게이 (남자동성연애자)54명을 대상으로 AIDS 및 각종성병감염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이들의 혈청검사를 국립보건원에 의뢰한 것이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2명의 미국인이 AIDS환자임이 밝혀져 본국으로 송환된 일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한미군이나 관광객을 비롯, 외국인과의 접촉 기회가 많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이 무서운 질병이 이젠 강 건너 불이 아니다.
AIDS는 지난 79년 처음으로 미국에서 발생했고 최근까지만 해도 종주국격인 미국내에서만 문제가 됐으나 곧 세계도처에서 AIDS환자가 발생하면서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숫자만으로는 미국이 1만4천명가량의 환자가 발생했고, 브라질이 4백83명, 아이티공화국이 3백80여명, 그리고 캐나다·서독·영국등이 2백∼3백명 정도의 환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병의 잠복기가 6개월∼36개월정도나 되므로 잠재환자의 숫자는 얼마나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제여행이 활발한 현실로 비추어 AIDS의 감염과 확산의 위험은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는 없다.
이 질병이 제일 먼저 피해를 주는 대상은 모든 병균으로부터 우리 신체의 감염을 막아내는 백혈구들이다 .백혈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몸에 침입한 병균과 싸울 면역계통을 자극하는 지원인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면역반응이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억제인자들이다. 정상상태라면 지원인자의 수가 억제인자 수보다 2배나 많다. AIDS환자의 경우 억제인자 수가 지원인자 수를 크게 앞질러 면역계통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AIDS에 걸리면 병균에 대한 저항력을 잃고 결국 빠르면 수개월, 혹은 수 년 안에 죽고 만다.
이 병의 주요 감염경로가 성적인 접촉에 의한 것임은 미국의 AIDS환자의 75%가 동성연애자들이란 사실에서 입증되고 있다. 또한 창녀들에 의해서도 전염이 되고 이 병에 감염된 환자의 혈액을 수혈하거나 사용했던 주사기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단순한 접촉에 의해서도 전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이로제적 반응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서구제국은 헌혈자의 AIDS감염테스트를 의무화하고 있고 다른나라들도 보균자의 입국금지 및 추방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 국방성은 국내외에 있는 전미군 2백10만명에 대해 AIDS바이러스 보균여부를 검사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4만명 정도의 미군이 주둔하고, 1년에 1백30여만명(84년)의 외국인 관광객이 드나들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예방책이 철저해야 할 것이다. 특히 퇴폐적인 유흥업소나 목욕탕·이발관등 우리 주변에는 성병에 대한 무방비지역이 산재해 있어 보균의 음성화 위험은 높다고 보아야 한다.
AIDS의 예방은 역학적 차원에서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이 병을 현대인의 도덕적 타락과 성적문란에 대한 신의 저주요, 천벌이라고도 한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심각하게 새겨 볼만한 시각이다. 인간의 도덕성 회복과 건전한 성 풍토의 조성이야말로 AIDS같은 무서운 천형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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