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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릴레이 17] 박우수가 남경표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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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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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수 셰프

손을 보면 안다. 지금 식사하는 저분이 요리사인지, 아닌지. 평생 주무르고 휘젓고 누르고 움켜쥐었던 세월이 고스란히 손마디 굵기로 드러난다. 상처가 많고 빨갛게 짓물러 있을 때도 있다. 눈빛도 다르다.

잘 나가던 강남 일식집 닫고 전국 최고 맛집 수백 곳 순례
자신만의 우동맛 살려낸 고수

일반 손님이 접시 위 음식에만 빠져있는 반면 요리사는 재빠르게 식당 인테리어를 훑고 식기 브랜드까지 파악한다. 주방 분위기, 홀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게 느껴진다. 검객이 검객을 간파하듯, 셰프는 셰프를 알아본다.

‘메르씨엘’ 윤화영 셰프가 ‘아오모리’(부산시 해운대 센텀호텔)에 식사하러 왔을 때도 그랬다. 통성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요리하는 분이구나’ 하고 느꼈다.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을 좋게 보고 음식을 과찬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요리를 선보여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본지 6월 13일자 22면 셰프릴레이 16회>

2008년 ‘아오모리’를 열었을 땐 스시가 주력 메뉴도 아니었다. 단골이 늘어날수록 그분들에게 서비스할 나만의 확실한 기술이 절실해졌다. 2013년 어쩌다 인연을 맺은 일본 도쿄의 스시집 ‘시미즈’에서 20일 정도 배울 기회가 생겼다. 처음 사흘간 묵묵히 청소와 설거지만 했다. 나흘째 되던 날 스시 장인이 말했다. “자세가 겸손해 마음에 드는군.” 그때부터 정식으로 시장에 데려가 여러 재료 다루는 법을 하나하나 일러주셨다.

공기를 머금은 탄탄한 샤리(밥)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네타(밥 위에 올라가는 재료), 그 식감과 맛을 즐기는 요리가 스시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만의 스시를 다듬어가는 중이다. 기력이 버텨주는 한 ‘시미즈’ 같은 스시 전문 식당을 하면서 늙어가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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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통단의 냉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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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표 셰프

한국에서 일식을 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담는 사람. 지금은 경기도 성남시청 인근에서 우동 전문 식당 ‘면통단’을 하는 남경표 셰프가 그렇다. 남 셰프는 원래 서울 압구정동에서 퓨전 일식집 ‘옌’으로 10년간 명성을 떨쳤다. 숱한 연예인은 물론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훗날 대통령이 된 정치인들도 그의 음식을 즐겼다.

2013년 잘나가던 식당을 닫더니 본격 우동집을 하겠다고 나섰다. 근 1년 반 동안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당 수백 군데를 헤집고 다녔다. 광주 육회비빔밥집, 통영 굴국밥집, 포항 물횟집 등을 찾아 ‘맛과 성공의 공식’을 연구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에서 뚝 떨어진 호젓한 동네에 차렸는데도 끼니마다 문전성시다.

우동 한 그릇으로 기품 있는 한 끼를 누린다는 게 이런 기분일 거다. 자극적인 소스 없이 육수 자체에서 깊은 맛이 우러난다. 원래는 우동 면을 직접 제면하려 했다는데, 가게 크기와 위생 등의 문제로 전문 제면소에 맡겼다고 한다. 계절 변화에 맞춰 밀가루 반죽 탄력과 소금 함량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그렇게 입안으로 빨려 들어온 우동 면발에선 19세 때부터 요리 한길을 걸은 남 셰프의 성실함이 차지게 씹힌다.

가게 한쪽에 우동 그릇을 든 남 셰프의 초상화가 있고 그 아래 이런 문구가 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웃는 법이지”(영화 ‘우동’ 중에서). 둘러보라, 아이도 어른도 웃고 있다.

정리=강혜란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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