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9) 제83화 장경근일기(30)-추적은 끊이지 않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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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1년1월25일>
후꾸오까 지방재판소가 1월21일자로 이병균군의 보석을 승인했다. 보석금이 10만엔이다. 이 문제 역시 김기철사장이 맡아 오늘 아침 부사은행을 통해 보석금 10만엔을「나가사끼」변호사에게 송금했다.
그런데 또 다른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일본명「안또」(안등무치)라는 교포 조은상씨가 후꾸오까로 가 구치소에 있는 이병균군을 면회하고 이군이 내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이것을 나의 신원보증인「호스미」(수적오일)씨에게 보내왔다.
「호스미」씨는 아시아문화회관을 운영하는 아시아학생문화협회 및 해외기술자연수협회 이사장이다. 나는 김기철사장을 통해 이 분파 친교를 맺었다. 그런 인연으로 거처를 숨기고 있는 나를 위해 나의 보증인이 되어 나의 외부연락을 줄곧 맡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조은상씨라는 분은 지난1월9일「호스미」씨를 찾아와 차기는 자치대신「야스이」(안정)씨와 친분이 있는데 역경에 처해있는 나를 돕고싶으니 만나도록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야스이」씨는 조씨를 일단 김사장과 만나게 했다. 김사장이 만나봤더니 오오사까에 있는 대양흥업의 대표취체역이란 명함을 내놓고 중앙산업 조성철사장의 조카뻘이 된다면서 역시 나를 돕겠다는 얘기를 하더라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돕겠느냐고 물었더니 원조금은 교포 유지로부터 걷겠다는 등 얘기가 미덥지 못해 지금은 장씨를 만나게 할 수는 없고 성의가 있다면 후꾸오까에 갇혀 있는 이병균비서를 원조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조씨는 그 길로 후꾸오까에 가서 당국자에게 자기는 이군의 친척이라고 하고 이군을 면회한 뒤 이군의 편지를 받아 내게 보낸 것이다. 전혀 모르던 사람이 오오사까에서 도오꾜∼후꾸오까를 내왕한 것을 보면 보통이상의 관심이긴 하나 후꾸오까에 가서 이군에게 도움을 준 것도 없다는 얘기니 아무래도 나의 거처를 알아내려는 데만, 마음쓰는 사람이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무엇을 노린 손길인지 염려스럽다.

<◇61년2윌14일>
오늘 일본경찰이 조은상씨를 경계하라고 통보해 왔다. 그는 2월9일 오오사까에서 도오꾜로 왔으며 「호스미」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병균군을 만나겠다는 연락을 했다. 일본경찰은 그의 그런 행동에 수상한 점이 많아 조사를 했더니 명함에 적힌 오오사까의 주소나 회사가 모두 허위고 도오꾜에 와서는 신쥬꾸(신숙)의 하류 하숙집에 머물면서 나의 거처만 탐색하고 있어 조총련이거나 아니면 북조선의 지령을 받는 인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서울 누님의 소식 역시 비슷한 위협이다. 내가 비밀로 보낸 편지에 대해 누님이 오늘에야 회신을 보내왔다. 편지에는 아이들소식, 특히 나의 도피방종 등 혐의로 구속되었던 황세환군 등이 모두 석방되어 남산동 집에서 함께 잘 지낸다는 반가운 소식이 담겨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 편지 안에 기자라고 자칭하는 원이라는 사람이 도오꾜에 나가 나를 노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인 한사람과 서울에 돌아와 남산동 집을 수소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누님은 원이라는 사람이 며칠 안에 힘센 사람 5∼6명과 함께 체육회 대표라는 명칭으로 도일하여 나의 거처를 찾을 계획이고 거액의 공작금도 준비했다는 얘기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다.

<◇61년2월23일>
오늘 삼오 동경출입국관리당국이 이병균군을 수감했다. 지난1월 후꾸오까 재판소의 보석결정으로 출감하면서 출입국관리소에 들러 가석방 승인을 받았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몰라 곧장 도오꾜로 와버린 불찰 탓이다. 도무지 고난이 가실 줄 모른다.
본지 독점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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