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52도 기운 건물 두 동 합체, 21세기 피사의 사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4호 6 면

1986년 완공된 복합건물 ‘래플스 시티’는 몇 년 전까지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다. 래플스 시티에는 완공 당시 세계 최고층 호텔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73층 높이의 ‘스위스 더 스탬퍼드 호텔’이 있다. 24년 뒤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을 다시 바꿔 놓은 건축물이 들어섰다. 현대판 ‘피사의 사탑’으로 불리는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두 랜드마크 건축물은 도전정신과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쌍용건설의 손에서 탄생했다. ?


쌍용건설은 래플스 시티를 건설할 때 고층까지 쏘아올리는 유압식 펌핑 시스템을 도입해 250m까지 콘크리트를 쏘아올렸다. 48시간 연속 콘크리트를 타설해 3~4일 만에 1개 층을 올리는 공법도 선보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의 초고층 건축물은 쌍용건설이 래플스 시티에 적용했던 공법대로 지어지고 있다. 당시 쌍용건설의 기술력이 얼마나 앞섰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쌍용건설은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래플스 시티를 세운 지 24년 후인 2010년 상당수 건축업계 관계자들이 시공할 수 없다고 본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을 지었다. 호텔 외관은 두 장의 카드가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모양으로 입(入)자형 구조로 설계됐다. 200m 높이의 건물 3개 동과 그 위를 연결하는 스파이 파크로 구성된 호텔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공사엔 레미콘 트럭 3만2500대 분량의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이곳에 들어간 철근을 이어 붙이면 2만여㎞나 된다. 호텔 한 면을 뒤덮는 유리창은 9000장 이상 사용됐다. 공사비는 1조원에 달한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은 건물 외관이 독특한 만큼 시공 과정도 까다로웠다. 두 개의 건물이 기대어 선 각 동의 하층부는 한쪽 건물이 활처럼 휘어 있다. 지면에서 최고 52도 기울어져 있다. 현대 건축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다. 피사의 사탑보다 10배 더 기울어져 있다.


초고층 건축물 공법의 교과서 이 때문에 각 동의 기울어진 구조물을 ‘어떻게 쌓아올리느냐’가 가장 큰 과제였다. 동측 건물을 지상 70m(23층)에서 서측 건물과 연결한 후 57층(옥상 스카이파크 포함)까지 건설하는 방식으로 경사진 구조물 시공을 위해 교량 건설에 쓰이는 특수공법이 동원됐다.


설계상으로 두 건물이 23층에서 연결돼야 서로 무게와 전체 건물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경사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아래층보다 안쪽으로 건물을 돌출시키면서 한 층씩 쌓아나가야 한다. 두 건물이 만나는 23층까지 기울어진 구조물을 지탱할 수 있는 공법이 필요했다.


쌍용건설 기술진은 콘크리트 벽 안쪽으로 강연선(여러 가닥의 강철선을 꼬아서 만든 줄) 케이블을 설치하고 이를 당겨 구조물을 지탱하는 ‘포스트 텐션(Post Tension)’ 공법을 도입했다. 23층까지 양쪽 건물의 고강도 콘크리트 벽체 내부에 수천 개의 케이블을 설치한 뒤 각 건물 지면에 설치된 케이블을 통해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방식이다. 수직 벽체에는 이 공법을 적용했던 사례가 없었다. 쌍용건설 기술진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쳐 이 공법을 적용했다.


두 건물이 23층에서 연결된 뒤에는 별도의 장치 없이도 지탱할 수 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23층에서 만난 이후 쌓아지는 건물 상부의 하중 때문이다. 기울어진 건물은 상대적으로 하중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약해 덜 기울어진 건물로 더 많은 하중이 가도록 해야 한다. 쌍용건설 기술진은 한쪽 건물이 미는 힘을 버틸 수 있도록 무게가 3000t에 달하는 철골 구조물을 설치하고 이를 서로 연결하는 공법인 ‘트랜스퍼 트러스(Transfer Truss)’를 적용했다. 이 공법을 통해 덜 기울어진 건물과 많이 기울어진 건물에 전해지는 하중을 60대 40으로 분산할 수 있었다. 휜 다리를 지탱하는 데 사용하는 공법을 수직건물에 적용한 것이다.


강연 꼬아 만든 케이블로 지탱 공사의 마지막은 호텔 3개 동 상층부를 연결하는 축구장 2배(1만2000㎡) 크기의 ‘스카이 파크’를 짓는 것. 이를 위해 총 7700t 무게의 철골 구조를 지상에서 조립해 200m 위로 끌어올려 시공하는 고난도의 ‘헤비 리프팅(Heavy Lifting)’ 공법이 적용됐다. 200m 높이에 조성된 스카이 파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 야외 수영장이 있다. 한쪽 끝에는 동시에 9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전망대는 하부 지지대 없이 건물에서 67m가 돌출된 구조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의 적정 공사 기간은 48개월 정도다. 쌍용건설은 다양한 첨단 공법을 적용해 전체 공사를 시작한 지 27개월 만에 공사를 끝내 세계 건축업계를 놀라게 했다. 하루 최대 10여 개국 6000명에 이르는 인원이 24시간 공사했다. 1200만 인시(한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일했을 때의 일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 무재해 달성 기록도 세웠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완성한 쌍용건설은 토목공사를 수주해 싱가포르에서 또 한번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쌍용건설이 2014년 7월 완공한 왕복 10차로 규모의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고속도로다. 공사 구간이 1㎞에 불과하지만 1m당 공사비가 8억2000만원으로 총공사비가 8200억원에 달한다. 지반이 불안정한 매립지 지하에 들어서는 고속도로여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다.


싱가포르 매립지에 고속도로 건설 쌍용건설은 지표면 15m 아래에 시멘트를 넣어 10~19.5m 두께로 약 81만㎥(국제규격 수영장 330개 규모)의 연약 지반을 견고한 지반 구조체로 바꿨다. 연약 지반에 시멘트와 물을 혼합한 슬러리를 주입하면서 특수 교반기를 이용해 기계적으로 혼합하는 공법인 ‘DCM(Deep Cement Mixing)’ 공법과 시멘트를 고압으로 분사해 견고한 구조체를 만드는 ‘JGP(Jet Grouted Pile)’ 공법을 지반 조건에 맞게 적용했다.


?고속도로 터널 아래로 지하철이 개통될 예정이어서 도로 시공과 함께 4~5m 아래에 285m 길이의 지하철(박스형 터널 구조물)을 함께 건설해야 했다. 지하 박스터널 구조물을 지지하기 위해 직경 1~2m, 최대 깊이 75m의 현장 타설 말뚝을 1350여 개 시공했다.


특수공법도 적용했다. 지하에 들어서는 최대 120m 폭 곡선 구간 벽체에 전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흙막이 벽체를 설치하고 버팀보를 활용하는 ‘수퍼빔(Super Beam)’ 공법을 싱가포르 최초로 도입했다. 좌우 벽체 중간에 수퍼빔이라는 임시 콘크리트 구조체를 설치하고 버팀보를 양쪽에 가설해 양쪽 벽체에 가해지는 흙의 압력이 버팀보에 수직으로 작용하도록 한 것. 좌우에 전해지는 힘을 효율적으로 지지하면서 안정적인 굴착공사를 할 수 있었다.


이 공사에는 80대의 중장비가 24시간 2교대로 투입됐다. 하루 최대 10여 개국 1000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대규모 현장에서 무재해 1070만 인시를 달성했다.


?마리나 해안고속도로는 싱가포르에서 각종 안전 관련 상을 휩쓸었다. 싱가포르 최고 권위의 안전 관련 대상인 ASAC(Annual Safety Award Convention)를 유일하게 5년 연속 받았다. 지난달엔 싱가포르 건설청의 건설대상(BCA Awards)에서 토목 부문 시공 대상을 수상했다. 쌍용건설 조현 상무는 “수퍼빔 공법은 설치 당시부터 싱가포르 건설청을 포함한 정부기관·학교·연구기관·건설업체 등에서 견학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며 “싱가포르 건설대상을 수상해 고난도 토목공사의 시공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