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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새로운 서사는 전통 안에서 태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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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소설 『제인 에어』의 흔적은
21세기 영화 '미 비포 유'에서도 발견된다.
영국 문학의 전통은 그렇게 동시대적 문제로 변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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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저리` 스틸컷]

환자와 보호자 관계는 얼마나 섹시한가.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 외에 의존할 데 없는 처지이기를 한번쯤 바랐던 사람이라면, 이처럼 이상하고 왜곡된 관계 속에 아주 오래된 에로티시즘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음을 짐작할 것이다. 그렇기에 ‘미저리’(1990, 로브 라이너 감독)에서 여자는 끊임없이 남자를 환자로 남겨 두려 하고, ‘사이코’(1960,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주인공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세워 짓눌린 관계를 자처한 것이리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적 보호자가 되고 싶은 욕망. 그러한 설정은 생각보다 많은 문학 작품에 등장한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1847)다. 사회 밑바닥 계층인 고아 출신 가정 교사 제인 에어가 주인공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성주 로체스터의 아내가 된다. 언뜻 신데렐라 이야기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복적인 부분이 많은 페미니즘 소설이기도 하다. 신분이 낮은 여인을 왕자님이 구원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 구원되는 쪽은 제인이 아닌 로체스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는 성주 로체스터가 ‘갑’이고 가정 교사 제인이 ‘을’이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탄로 나자, 윤리적 측면에서 로체스터는 추락하고 제인의 도덕성은 상승한다. 그 후 제인은 존재조차 몰랐던 백부에게서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는다. 가난뱅이 고아에서 부유한 상속녀로 탈바꿈된 것이다. 상황이 달라진 제인은 로체스터를 구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자의 상태다. 아내가 저지른 방화로 인해, 그토록 멋진 로체스터의 숀필드 저택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사고까지 당해 눈과 다리도 잃는다. 한마디로 환자, 아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제인은 기꺼이 로체스터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해, 아프고 가난한 그를 떠안아 평생 돌보기로 마음먹는다. 오히려 그가 가진 것이 많았을 때보다 제인은 훨씬 편해 보인다.

지금 『제인 에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개봉한 영화 ‘미 비포 유’(6월 1일 개봉, 테아 샤록 감독)에서 『제인 에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적으로 완전히 달라졌지만, 이야기 뼈대에 제인과 로체스터가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여주인공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만 해도 그렇다. 차브(Chav·유행을 추종하는 영국의 저학력 저소득 젊은이) 계층인 그의 가정 환경 말이다. 19세기엔 고아 출신 가정 교사가 하대받는 위치였다면, 21세기 영국에서 멸시당하는 이들은 차브다. 그런 루이자가 ‘트레이너 성(城)’의 젊은 성주 윌(샘 클라플린)의 ‘돌보미’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가진 것은 많지만 건강을 잃고 인생의 재미마저 잃은 남자, 그런 그를 진심으로 돌보는 하층민 출신의 밝고 건강한 처녀. 이러한 설정 자체가 오래된 영국 문학의 자취다.

‘미 비포 유’는 영국 문학의 전통을 바탕에 두되, 매우 세련된 방식의 동시대적 문제로 변주한다. 안락사는 그 현대적 징표 중 하나다. 제인에게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가 장애물이었다면, 루이자에게는 윌의 전신 마비와 안락사에 대한 열망이 걸림돌이다. 19세기 엘리자베스의 지독한 가난과 섣부른 자존심이라는 장애물(『오만과 편견』)이 21세기 노처녀 브리짓 존스의 알코올 의존과 과체중(『브리짓 존스의 일기』)으로 변주되듯 말이다.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영국 로맨스 소설의 위풍당당한 서사적 DNA가 세련된 현대적 리듬으로 변주 중인 것이다. 전통의 변주란, 원래 우리 안의 흥미로운 성공 사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서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요한 문제는,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틀이다. 그렇게 전통 안에서 새로운 서사가 발견되고 계발된다. 가정 교사가 차브로 변주되는 순간, 과거의 전통은 이미 현재로 재탄생한 셈이다.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통속에도 전통이 있는 것이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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