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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북한의 ‘대북제재 대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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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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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북한이 연일 대화 공세다. 국방위원회 공개 서한(5월 20일), 인민무력부 통지문(5월 2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담화(5월 22일), 통일대회합 제안(6월 9일) 등 스토커 수준으로 대화를 하자고 요청하고 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당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대화 공세를 펼쳤다. 최근 그들의 대화 공세를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를 상위 개념으로 설정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등은 하위 개념으로 전락해 버렸다. 북한이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대화 모드일까?

북한은 대화 공세를 통해 명분을 만들려고 한다.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대북제재를 완화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노력이 한국에 효과가 없더라도 미·중엔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대화하려는 모습은 의미가 크다. 중국은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민생 부문에 영향을 주는 것에 반대해 왔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으려면 이런 노력은 필요하다.

대북제재는 북한에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장치다. 그래서 북한은 200일 전투, 시장의 활성화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200일 전투는 주민을 쥐어짜고 시장의 활성화는 숨통을 터주는 것이다.

최근 중국 지린성에서 중국의 북한 연구자를 만난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대북제재를 극복하는 능력을 갈수록 발전시키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북한 주민이 고통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통을 극복하는 요령도 터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사례를 들면 북한 무역 일꾼이 중국에 물건을 수출하려면 노동당·국가안전보위부·세관 등 8개 기관에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허락을 위해서는 뇌물이 필수적이다. 대북제재 이후 8개 기관은 무역 일꾼으로부터 뇌물을 적게 받고 편의를 더 봐주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제재를 받다 보니 스스로 터득한 ‘대북제재 대처법’이다.

북한과 정도는 다르지만 러시아도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유럽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말 러시아에서 만난 주민들은 “제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과거처럼 제재에 맞춰 살면 된다”며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래서인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거의 듣지 못했다. 러시아 여론조사 업체 레바다 첸트르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80%였다. 과거보다 다소 하락했지만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는 여전했다.

러시아 주민들은 “우리는 제재를 받으면 더 뭉치는 경향이 있다. 미국·유럽 등은 우리들이 제재로 고통을 받으면 그 불만을 지도자에게 돌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것은 오산”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에서 보듯이 ‘대북제재 대처법’을 터득하는 북한에 제재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어떨까.

고 수 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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