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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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79년은 악몽같은 해였다. 세계 우유의 사재기(가수요)현상으로 유가가 한때 배럴당 45달러까지 올라갔었다. 그해 12월의 일이다.
그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는 80년 정초 유가 80달러시대의 도래를 예언했었다. 1985년의 유가는 45달러, 1990년엔 적어도 80달러 이상은 될것이라는 연구보고였다.
원인은 한마디로 공급 불안.
미국 의회는 그무렵 더 어두운 전망을 했었다. 그해(80년)5월 의회의 한 보고서는 85년의유가를 52달러로 예상했다.
이런 자료들을 놓고 일본의 경제평론가들은 유가 1백달러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다.
그후 5년. 모든 예언들은 그 어느것도 맞지 않았다. 거꾸로 「역 석유파동」 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지난해부터 영국이 북해산 석유값을 내리면서 유가 인하 러시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0일 외신은 사우디아라비아가 10월1일부터 유가를 2∼3달러 내릴것이라는 보도를 하고 있다. 드디어 78년말 수준인 25달러시대로의 후퇴다.
그 많은 유가 「연구」 가 천만다행으로 들어맞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세계시장 점유율 전락. 80년까지만해도 65%에 달하던 OPEC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35%로 떨어졌다.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했던 비OPEC 산유국들의 공로가 컸다.
둘째, 석유 최대 수입국인 미국의경우 중동석유 직수입량이 77년 36%에서 85년 7%로 격감했다. 그대신 자유시장 (스포트 마키트)과의 거래량이 77년 5%에서 이제는 70%로 격증했다.
세째, 에너지의 구조 변화. 70년초1차 오일 쇼크이후 에너지 절약 기술의 개발, 석유 대체에너지 개발 효과가 8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굴뚝산업」이 쇠퇴하고전자중심의 첨단산업이 두각을 나타낸 것도 특기할 일이다. 에너지소모가 적은 고밀도 반도체산업의 발전이 그 대표적 예.
한편 비석유에너지의 소비가 지난 13년동안 31%나 늘었다.
네째, 미국의 스트롱 달러정책. 달러화 강세는 경기 위축과 함께 현물보다 통화에 대한 신용을 높여주었다.
다섯째, 정유기술의 발달. 값비싼 경질유보다 값싼중질유를 가지고 고급석유를 만들수 있는 기술이 발달했다.
이런 현실은 유가의 인하를 부채질해, 80년 달러의 불변가격으로 환산해 지난 5년동안 40%의 유가인하 효과로 나타났다. 78년 기준으로 지금의 유가는 15달러 수준.
「브라우닝」의 시구가 생각난다. 『세상사, 하느님과 함께 잘 되어 가는군.』
세상엔 아직도 절망보다 희망이 더 많다는 교훈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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