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엔 압박, 大選자금은 물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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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시티 사건과 여기서 번진 대선자금 파문에 대한 여권의 대응방식이 점입가경이다. 물타기에 억지쓰기, 야당을 끌어들이는 '물귀신 작전' 등 정치권의 낡은 수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이런 여권의 태도에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양식, 법과 원칙은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청와대가 내놓은 해법은 수순부터 틀렸다. 노무현대통령은 15일 "여야가 대선자금의 모금과 집행내역을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자"고 했고, 하루 전엔 정치자금법 개정을 제의했다. 그러나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 것은 불법정치자금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언급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진 쪽에서 먼저 답변하는 것이 순서다. 鄭대표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청와대와 민주당이 대선자금의 전모를 공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면 여론은 야당의 대선자금 공개를 압박하게 될 것이고,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는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나오게 돼 있다.

논리도 맞지 않는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권 모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솔한 고해성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해성사(告解聖事)'란 지은 죄를 뉘우치고 신부를 통해 하느님에게 고백해 용서를 구하는 가톨릭 신자의 종교행위다.

진정 고해성사를 할 의사가 있었다면 집권하자마자 "사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더라"고 국민에게 고백했어야 했다.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 사실을 밝히겠다는 것은 해명이나 변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내탓이오'를 외치며 국민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야당을 끌어들여 '너와 내 탓이오'를 하자니 이는 고해성사와는 한참 거리가 먼 정략적 발언으로밖에 볼 수 없다.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만들어 대선자금에 대한 면책규정을 둘 수도 있다"는 발언도 주객이 뒤바뀐 발상이다. 면죄부를 주고 안 주고는 법리적으론 사법부의 몫이며, 정치적으론 국민의 판단을 겸손히 기다려야 할 대목이다. 어떻게 범법혐의를 받는 당사자들이 담합해 스스로를 사면하자고 말할 수 있는가.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오만한 발상이다.

민주당의 鄭대표 감싸기도 꼴불견이다. 의원총회와 당직자회의에선 '검찰 수뇌부와 鄭대표 소환일정 조율'을 공공연히 주문하는가 하면 이제는 '검찰총장 국회 출석 추진' 언급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는 검찰 독립을 선언한 盧대통령의 뜻과도 배치될뿐 아니라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노골적 외압 행사다. 지금이라도 여권은 속 들여다보이는 얄팍한 정치공세에 집착하지 말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정도로 돌아서야 실마리가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