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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클릭] 밤 10시 학원 끝나면 카페 가요, 숙제하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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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24시간 카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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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위치한 24시간 카페. 오후 11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카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김경록 기자

2010년 학원 운영시간 제한 후 카페로
“집 에선 리듬 깨져…독서실보다 저렴”
헌재 “학원 심야교습 규제 조례는 합헌”

지난 2일 오후 10시 10분. 대치동 학원가의 한 24시간 카페.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두 명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원탁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거의 눕듯이 소파에 등을 파묻고 앉는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휴식도 잠시, 곧바로 검정 가방에서 교과서와 문제지 등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다. 옆 테이블도, 건너편 테이블도 비슷한 풍경이다. 중간중간에 과외 받는 학생도 눈에 띈다. 평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100여 개의 자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중 대부분은 앳된 얼굴의 중·고등학생이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경기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재은(17)양은 말했다. 이양은 “대치동 학생들에게 카페에서 공부하는 건 언제부턴가 당연한 풍경이 됐다”며 “독서실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덜 답답해 평상시에 새벽 1~2시까지 카페에서 공부하곤 한다”고 말했다. 대치중 3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은 “밤 10시에 학원을 마치더라도 그날 해야 할 숙제가 늘 남아있다”며 “집에서 할 수도 있지만 학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리듬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카페에 남아서 마무리를 하고 집에서는 잠만 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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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학원에서 나와 다시 카페로 향하는 학생들.

한편 카페를 일종의 해방구로 여기는 학생들도 있었다. 오후 10시에 학원을 마치고 왔다는 경기고 1학년 정호연(16)군은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놀기 위해 온 것”이라며 “도서관이나 독서실은 분위기도 딱딱하고 새벽까지 있을 수도 없다. 밤늦게 갈 수 있는 24시간 카페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 역시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공부하기를 원해 학원을 마치고 이곳에서 시간을 때우다 간다”면서 “이곳에 오면 부모님 눈을 피해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고 피곤하면 잠시 쉴 수도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피곤해서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24시간 카페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카페에 모여 있는 학부모에게 “학생들이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카페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는 이모(45·대치동 거주)씨는 “학생들이 공부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카페에서 새벽 2시 정도까지 공부하는 건 괜찮다. 우리 아들도 새벽 1시까지는 공부하다 귀가한다”고 말했다. 함께 앉아있던 학부모는 “학원이 밤 10시에 문을 닫으니 어쩔 수 없다. 학원 시간제한이 없는 지방의 경우 학원에서 늦게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라도 있어야 한다”면서 “도서관보다 카페를 선호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치동 24시 카페에 이러한 풍경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건 2010년, 서울시의회가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학원 운영 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제한하면서부터다. 정책은 사교육 부담을 줄이지도 학생들 건강을 챙기지도 못했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강남 지역 월평균 가구당 사교육비 지출액은 2009년 109만원에서 2011년 114만원, 2013년 121만원, 2015년 129만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또한 대부분 대치동 학원은 규정대로 오후 10시에 문을 닫았지만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인근 24시간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나머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치동의 일부 학원들은 새벽 1~2시까지 몰래 영업을 계속하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4시간 카페 주인들의 사정도 나빠졌다. 카페는 늘 학생들로 북적였지만 영업에는 오히려 해가 됐다.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이동원(22)씨는 “중·고등학생 손님들은 사람 수 대로 음료를 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등을 고려했을 때 매출에는 오히려 해가 됐다”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어린 학생에게 사람 수대로 음료를 시키라고 말하기도 난처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총 3개였던 대치동의 24시간 카페는 이제 1곳을 제외하곤 영업시간을 오후 11시로 단축하거나 가게 업종을 바꿔버렸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6일 ‘학원 영업시간 제한 규정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원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학부모와 학원 운영자 등이 제기한 헌법 소원에 대해 “학원 심야교습 규제 조례는 합헌”이라며 “심야에 한해 학원 교습을 제한하고 있을 뿐 학생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학부모의 자녀교육권 등은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시교육청 이연주 평생교육과장은 “중요한 건 학원 시간 연장, 축소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경쟁이 너무나도 극심한 현 입시제도”라며 “학생들이 적성에 맞는 진로개발을 할 수 있게끔 제도를 전반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 김성현 인턴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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