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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맑고 예쁜 색채로 그려낸 무욕의 제주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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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왈종 개인전 ‘제주생활의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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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생활의 중도’(2013). 어느 한쪽에 중도(中道)란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이왈종 화백의 생활철학이자 예술철학이다. [사진 현대화랑]

교수직 버리고 자연과 하나된 지 27년
연애하듯 꽃과 새, 물고기, 풀을 담아
“존재하는 것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

제주로 내려가는 국내 이민족이 늘어난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왈종(71) 화백이 생각난다. 마흔다섯 한창나이에 추계예술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그림만 그리고 살겠다며 제주로 훌훌 떠나버린 그다. 그 누구보다 일찌감치 제주 자연의 풍요로움을 알아본 그의 혜안은 이후 ‘제주생활의 중도’라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태어났다. 기존 동양화 틀을 벗어던진 자유롭고 여유로운 그의 작품 앞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제주는 작가의 이상향이었던 모양이다.

지난달 17일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개막한 개인전 제목도 ‘제주생활의 중도’다. 중도(中道)는 이 화백의 생활철학이자 예술철학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은 그대로 화폭 속에 동영상처럼 이야기가 되어 들어앉는다. 화사한 꽃과 나무 아래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삶, 그림 그리다 낮잠도 자고 골프 치다 멍 때리기도 하는 무심(無心)의 경지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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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왈종 화백

이 화백의 제주생활은 올해로 27년째다. 2013년 서귀포시 칠십리로에 세운 왈종미술관은 이제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꼽는 명소가 됐다. 10여 년 전부터는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그림을 가르치는 미술교실을 열고 있다. 미술전문잡지 ‘월간미술’과 왈종미술관(064-763-5080)이 손잡고 펼치는 기부행사 ‘어린이 돕기 유니세프 기금마련 판화 및 소품전’도 다섯 번째 판을 벌였다. 갈수록 풍요로워지는 제주살이에 대해 그는 중도론을 펼친다.

“존재하는 것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며, 또한 그림자와 같다는 법문이 실감 난다. 몸과 마음속에서 악취 나는 것을 씻어내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에서 이뤄지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평등하다는 것을 하얀 종이 위에 담는다.”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인생을 건 이 화백은 화면을 채우는 형상 하나하나에 연애하듯 정성을 기울인다. 꽃과 새, 물고기, 자동차, 동백꽃, 노루, 텔레비전, 남과 여, 나무와 풀, 그의 유일한 여흥거리인 골프까지, 그는 마음을 비우고 가장 맑고 예쁜 색채로 스스로 희열을 느끼며 붓질을 한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이왈종은 색채를 음악으로 치환시키는 놀라운 연금술을 발휘한다. (…) 이 놀라운 색채의 순수성과 변주의 전개는 때로 민화의 치졸성과도 관계를 지니며 무속적인 희구마저 지닌다”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화려한 문양과 채색의 목조 작품을 보면 무구(巫具)의 생기발랄하면서도 간절한 생의 염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화백은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끊고, 오로지 평상심으로 그리고 또 그릴 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일까지. 02-2287-3591.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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