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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사 동상건립계기로 하와이 현지좌담|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새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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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박사서거 20년만에 그분이 직접 세운 하와이 한인교회 뜰에 동상이 세워졌읍니다. 이번 동상건립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요.
▲윤=작게는 하와이 교민사회의 새로운 화합을 위한 것이고 좀더 넓은 의미로 본다면 이박사가 못다이룬 유업인 민족통일의 염원을 이동상을 세움으로써 한반도에사는 모든 국민들에게 일깨우고자 함입니다.
이박사가 청년시절 활동하던 하와이에는 동지회다, 국민회다 하는 파벌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뿌리가 남아 있었읍니다.
제막식날 양측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듯이 이제는 이박사 동상아래 다시 뭉치고 이번 동상건립을 계기로 이박사에 대한 「국내에서의 평가」도 새롭게 정립시켜야 할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최=개발도상에 있던 나라들가운데서 이박사처렴 시위군중의 뜻에 따라 선뜻 하야한 집권자는 그 유례가 없었던 걸로 압니다. 이박사 서거 1년전쯤 「맥아더」장군을 만났더니 『「한니발」·「나폴레옹」같은 위대한 영웅도 과오가 있었다. 남의 과오를 용서할줄 모르는 사람은 그자신 또한 용서받지 못하게 될것』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국내에도 이박사동상이 있기는 합니다만 모두 제한된 의미를 지닌것뿐이어서 역사의식이 포함된 동상건립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졌고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국독립의 발상지였던 하와이를 동상건립장소로 택하게 된것이지요.
-이박사가 서거한지 20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특히 하와이 교민들은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동상건립을 추진하여 이를 성사시켰는데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박사를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이 따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초기 하와이 이민의 한사람이었던 이박사는 훌륭한 민족교육자·지도자였을뿐 아니라 고난속에 생활을 영위하던 교민들과 함께 살아온 서민의 한사람으로 당시 조국이라든가 민족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채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던 이들에게 처음으로 조국사랑의 정신을 심어주고 종교를 통해 합심단결하면 우리도 힘을 얻을수있댜는 진리를 일깨워 주었던것입니다. 1세교민들은 특히 이박사가 「하와이에서 나온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는데 높은 긍지를 지니고 있읍니다.
▲안=나자신 초대내각의 장관을 지내면서 이박사를 모셨지만 이박사를 한때의 정치가로서가 아니라 민족정신에 투철한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있읍니다.
정부수립과 6·25사변, 또 그 전후의 대일관계둥 큰 역사의 흐름에서부터 대한민국의 연호를 단기로 쓰게된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고인이 직접 관여한 모든 일들을 돌이켜 보건대 이박사만큼 우리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몸소 실천한 사람은 드물것입니다. 이박사가 단순한 정치가 였다면 지금쯤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을게 분명합니다.
-최의원께서도 언급하셨읍니다만 이박사가 하야의 길을 택한 참뜻은 무엇이었읍니까.
▲황=이박사가 하야직후 망명하기까지 이화장에 있을때 당시 장개석자유중국 총통으로부터 위로편지를 받고쓴 답장을 보면 그의 뜻을 짐작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 편지의 사본은 아직도 제가 보관하고 있읍니다.
이 편지에서 이박사는 『한뜻으로 반공에 전념하다 밑을 살피지 못해 부정이 일어났는데 우리 학생들이 이같든 부정을 보고서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국의 장래는 암담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학생봉기가 있어 본인은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하야했읍니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읍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모두 연로하시고 특히 김교수님은 고희에 접어드시면서도 동상제작을 손수 맡으셨는데….
▲김=이박사 동상 제작은 처음이 아닙니다. 4·19가 있기 얼마전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우남기념관에 동상을 세우기위해 조각을 한적도 있읍니다.
이박사와 인연을 맺게된것은 57년 인천 만국공원에 세문 「맥아더」장군 동상제작때부터였읍니다. 선열과 위인들의 업적을 길이 남기는 한방편으로 그분들의 동상을 건립하는데 이박사는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
우리가 역대 대통령이나 훌륭한 지도자들의 동상을 세우게 된다면 그것이 이박사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 생각하고 그때를 대비해서 데드 마스크를 만들어 둔것입니다.
-이박샤의 생애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할때가 되었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안=한번의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역사적 인물을 완전히 매장시키는 것은 한민족의 역사를 중단시키거나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수도 있읍니다.
▲윤=동감입니다. 그래서 앞서 최의원이 말씀하셨지만 이박사의 동상이 멀리 이국땅에서 제막됐는데도 아직 국내에 변변한 동상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박사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서, 그가 우리나라의 초대대통령이었고 그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는 점등을 고려해서 이제는 한국내에서도 이박사의 동상을 건립할 필요성이있다고 생각됩니다.
▲최=이박사에 대한 재평가는 우리국민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박사가 남긴 과오나 공적을 놓고 논란을 하기전에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은 정치가나 국민 모두가 우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해야할것입니다. 훌륭한 역사의식과 도덕성의 바탕이 갖추어진다면 이박사에 대한 새로운 평가는 어느 일부의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전체의 의견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좀더 폭넓은 의견들을 모아야할것 같습니다.
이박사를 모시던분들 가운데는 동산(윤치영)선생님처렴 미수를 누리시는분도 계시고 다른분도 장수이신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우연한 일치는 아닌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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