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왕복통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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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 한달동안 정국을 긴장시켜온 학원안정법문제가 마침내 진정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여야가 꼭 한판 정면충돌을 벌일 것만같아 아슬아슬했는데 전대통령의 결단으로 고비를 넘기고 다시 대화정국이 회복되는듯이 보인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이번 결단이 여야최고지도자간의 대화의 산물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다행스럽다는 느낌이다.
여야가 지금까지 대화정치를 강조해왔고 학원법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노력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중간과정의 대화가 가시적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최고위층간의 대화로 매듭이 풀리게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대통령의 결단은 대화정치의 큰 선례가 된 셈이며, 앞으로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이런 선례에 의지할수 있게 됨으로서 문제해결의 정치영역이 한걸음 넓혀졌다고도 볼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에서 대화라는 말만큼 자주 쓰이고 강조돼온 말도 드물 것이다. 대화를 표방 않는 정당이 없고 대화를 않는다는 정치인이 없다.
새로 요직에 앉는 여야간부의 신입이사에는 의례『안으로 인화에 힘쓰고…상대 당과의 대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말이 들어간다. 그만큼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실제 정치현실을 보면 강조되는 것만큼 대화가 잘 돼왔다거나 대화의 결실이 꽤 축적돼가고 있는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정치사의 많은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조치로 결정되었고, 평소 문제가 없을때엔 곧잘 되던 대화도 정작 일이 생겨 대화가 필요한 사태가 되면 대화가 아닌 격돌로 끝장을 본 사례가 허다했다. 대화가 그토록 강조되는 것도 실은 필요한 대화를 제대로 못해온 정치현실의 반영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대화의 자세랄까, 대화의 기술이 아직도 미흡하고 정착이 안돼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대화가 이뤄지고, 그리하여 정국긴장이니, 경색이니 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
우선 제대로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 이견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모조리 한 편이거나 다 같은 의견이라면 정당이 아무리 여러개가 있고 정치인이 아무리 많아도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단합대회만 하면 다 잘 넘어갈 뿐이다.
대화는 이견이 있어야 가능하고 자기의견의 수정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가능한 것이다. 남의 의견을 듣고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기 의견보다 한수 위라고 판단되면, 또는 자기가 미처 생각못한 부분이 지적되면 자기의견을 수정·보완한다는 기본적인 자세가 있어야 대화가 되고, 그런 대화라야 유익할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화는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기의견을 수정·보완할 생각이 전혀 없거나 자기결정을 요지부동으로 해놓고 대화를 한다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설득이나 강요가 되기 쉽다.
또 한가지, 성공적인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논의하는 문제의 실상에 대한 인식차의 확인부터 있어야 하다는 점이다. 농촌정책에 관해 대화를 한다면 농촌실상이 어떻다 하는데서부터 얘기가 시작돼야 대화의 진행이 가능하다. 실상에 대한 서로의 인식이 어떤지를 따지지 않고 정책의 내용만 가지고 시야비야하는것은 옳은 수순이 될수 없다.
이번 학원법문제의 자초지종을 보면 여야간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여야 어느쪽도 이견을 듣고 자기 의견을 수정·보완해야겠다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야당은 내용이 채 나오기도 전에 펄쩍 뛰기부터 하면서 단번에 극한저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당은 학원문제의 실상에 대한 야당과의 인식차를 고려함이 없이 입법방침을 내놓았다.
서로 자기결론을 상대방에 먹이려 했을 뿐 실상이 어떠니까 어떻게 해야한다는 등의 실질대화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는 인상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문제가 최고위층간의 대화로 넘겨지고 여기서야 비로소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이런 과정을 돌이켜 보면 보다 일찍, 서로가 강행통과니 극한저지니 하는 말을 많이 해버리기 전에, 실상을 논의하고 대책을 협의하는 과정이 왜 없었던가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정부·여당의 일단연기조치로 학원법문제는 이제 한숨 돌리게 됐지만 여야는 앞으로 다시 문제에 부닥칠때는 정확한 수순과 올바른 자세로 대화를 해나가 주었으면 한다.
오고 가는 대화의 내용이 설령 가시돋친 험구와 듣기 거북한 비판이더라도 더 나은 결론과 더 많은 참여로 더 좋고 튼튼한 결론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역사에서는 왕왕 그때 그말을 들었던들 하는 아쉬움의 수많은 예가 있다.
그래서 대화는 미진한 구석이 없도록 필요하고도 충분하게 해야하고 그런 축적 위에 전개되는 정치라야 확실하고 안정감있는 정치가 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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