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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책이 장식물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말타면 종두고 싶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빗물이 떨어지는 단칸방에서 합판으로 만든 밥상머리에 앉아 공부할 때는 꽤나 진한 글을 썼다고 생각되는데 이제 등따습고 배부르니 마음이 변했는지 좀더 큰 집에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기야 남향받이 2층에 추사의 족자라도 하나 걸린 서재를 갖고 싶던 평소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두 세평짜리의 서재가 좁다고 투정을 할때면 가난했던 지난날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곤한다.
그러던 차에 학군이 어쩌구, 장래성이 어쩌구 하는 아내의 성화도 있어 나도 하나의 속물이되어 소위 강남 땅이라는 곳의 복덕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두장쯤 있습니까?』 하는 복덕방 영감의 말에 기가 질려 얼른 돌아오고 싶었지만 집흥정을 콩나물값 따지듯 하는 아내의 집념에 꺾여 터무니없는 집구경은 잘한 셈이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집은 돈이 모자라고 값이 맞는집은 눈에 차지않으니 어쩌랴
복덕방의 소퍼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마침 그자리에는 집장수가 있었다. 나는 문득 그 남향받이 2층서재가 있는 집을 짓고 싶은 생각에서 서재가 달린 가옥의 건축비를 물어보았다. 『서재라구요?』 그 집장수는 격에 안 이울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름한 내 행색을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말이 나온김에 나는 서재를 갖고 싶다고 다시 말했다.
『서재를 끼려면 평당 50은 더들지요. 아니, 서재야 비싼 가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맨바닥에 책꽃이 몇개만 놓으면 될터인데 오십이 더 들다니….
그러자 집장수의 말이 나를 어지럽게했다. 『책끼워주는 값도 쳐야지요』 그의 말인즉 요즘 돈깨나 번 졸부들이 집을 지으면서 무식한 티를 벗으려고 아예 책까지 집장수에게 부탁한다는 것이다. 내용은 따지지 않으며 호화 장정에 주로 무슨 백과사전같은 외국의 전집물을 끼우자면 아무래도 평당 50은 더든다는 것이다. 나는 소퍼에 몸을 숙이고 두 손으로 뒤통수를 감쌌다. 나는 자신이 서생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득 머리를 스쳐가는 것은 『아직멀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잘먹고 잘살게 됐다고들 말하더라만 이 시대가 집장수에게 책을 맡기는 세태라면 아직 우리의 지적 풍토는 암울할 수 밖에 없다. 이 문화 불모의 현상은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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