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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 누우면 쏟아지는 별빛 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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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8 면

대지에서 캠핑을 하면서 올려다 본 아프리카의 밤하늘. 별이 쏟아지는 듯 하다. 사진 주영욱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 중 ‘듄 45’의 모래 능선에 서서.
아프리카 오버랜드(Overland·육상) 트럭킹(Trucking)은 사륜구동 트럭을 개조한 캠핑 차량을 이용해 즐기는 여행이다. 승객이 앉을 수 있는 버스 형태의 좌석이 있고, 캠핑과 취사 설비를 모두 갖췄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탐험대들이 길도, 숙소도 없는 아프리카 대륙을 탐험하러 다닐 때 이용했던 여행 방식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지금도 유럽 사람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아프리카 여행 방법이다. 가지 못할 곳이 없고, 편리하고, 아프리카의 숨결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른 코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에서 시작해 짐바브웨와 잠비아 국경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까지였다. 트럭킹 여행 중 가장 매력적인 구간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 코스를 각 8일씩 두 번에 걸쳐 여행했다.


화려한 도시와 아름다운 사막, 야생 동물이 노니는 초원과 별이 가득한 밤 하늘, 생명력으로 가득 찬 강과 감동적인 폭포의 아프리카가 거기 있었다.

1 호수가 말라붙으면서 형성된 ‘데드 플라이’의 풍경

2 캠핑, 취사 설비를 모두 갖추고 승객을 태워 아프리카 대륙을 누비는 트럭킹 차량

3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만난 오릭스 무리. 우아하고 당당했다.

나미비아, 나우크루프트 국립공원으로 들어선 차는 거침없이 비포장 도로를 달려갔다. 못 가는 곳이 없는 전천후 사륜구동 트럭답게 거친 길을 그냥 내달린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황무지를 보면서 영화 ‘매드맥스’를 여기서 찍었다던데…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앞쪽에서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마주 달려오는 오토바이 두 대가 보인다. 마치 영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다. 순식간에 스쳐서 지나간다. 아프리카 대륙을 온몸으로 오롯이 느끼면서 여행하겠다는 용감한 여행객들이다. 그 용기가, 도전정신이 부럽다.


어느새 황무지는 사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붉은 느낌으로 빛나는 모래 언덕이 이어진다. 하늘은 시리도록 깊은 푸른 색으로 그 위를 덮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이라는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이다. ‘듄(Dune) 45’ 모래 언덕 앞에 멈춰 섰다. 많은 모래 언덕 중에서도 가장 멋져 보인다. 그 위로 능선을 타고 걸어 올랐다. 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밟히는 느낌이 좋다. 좀 힘이 드나 싶더니 어느새 정상이다. 대서양을 향해 달려가는 모래 언덕이 물결처럼 끝없이 굽이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보이지 않는 그 끝을 바라봤다. 신기루처럼 바다가 떠오르기를 바라면서.


‘데드 플라이(Dead Vlei)’를 보러 갔다. 600여 년 전에 호수가 뜨거운 햇볕에 항복하면서 증발해 버리는 바람에 하얗게 말라붙은 곳이다. 깊고 푸른 하늘과 산화철 때문에 붉게 빛나는 모래 언덕, 그리고 하얀 호수 바닥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세 가지 색깔의 대비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여기에 오랜 세월 동안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석탄처럼 변해버린 고사목이 신비로운 느낌까지 더해준다. 마치 화성에라도 온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우연히 사진으로 마주쳤던 이 이미지에 반해서 그동안 나미비아 사막을 꿈꿔 왔었다. 드디어 왔구나.


원래는 롯지(Lodge)에서 숙박을 하려고 했다. 호텔 방 같은 시설을 갖춘 곳이다. 캠핑을 해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도 하고 많이 불편할 것 같았다. 아무리 안전한 캠프 사이트라고 하더라도 야생 동물이 나타날 것 같은 불안감이 왠지 들었다. 여행을 인도해 줬던 형이 한마디 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등을 대고 누워서 그 대지의 숨소리를 느껴보는 것이 진정한 아프리카 여행아니겠어?” 두말없이 캠핑을 하기로 했다.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밤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에! 별이 가득하다. 잊고 있었던 은하수까지 도도하게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면서 하늘을 가로 지르고 있다. 아예 매트를 깔고 땅 바닥에 누웠다. 별이 쏟아지면서 온몸을 감싼다. 이렇게 많은 별 속에 누워 봤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그래, 여기가 바로 아프리카다.

6 에토샤 국립공원의 저녁 무렵. 멸종 위기에 있는 검은 코뿔소 두 마리가 석양이 내려앉은 물웅덩이에 조용하게 물을 먹으러 왔다.

4 에토샤 국립공원의 코끼리

5 오카방고 강에서 원주민의 통나무배, 모코로를 타고 하마를 보러 갔다.

해질 무렵 웅덩이 근처, 어디선가 검은 코뿔소 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오랜 이동 끝에 에토샤 국립공원 캠프에 도착했다. 해질 무렵, 물웅덩이 근처 언덕으로 석양을 구경하러 갔다. 날은 기분 좋게 선선하다. 야생의 강렬한 색감으로 조금씩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이 숨막히게 아름답다. 어디선가 거짓말처럼 검은 코뿔소 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웅덩이로 다가와 물을 먹기 시작했다. 몇 만년 전부터 해 온대로 자연스럽게. 불청객이야 그저 숨만 꿀꺽 삼키면서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느긋한 휴식을 방해받은 새들과 개구리만 불평하듯 시끄럽게 울어댔다.


코뿔소들이 물배를 채우고 돌아간 웅덩이에 이번에 코끼리 가족이 나타났다. 자기 영토라는 것을 주장이라도 하듯 거침없고 육중한 걸음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물을 뿌리고, 마시고, 쿵쿵거리는 것이 놀이터에라도 놀러 나온 것 같다. 행여나 그 큰 발에 밟힐까 걱정이 되는지 개구리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 사이 해는 마지막 남은 화려한 색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이제는 피곤하다는 듯 서서히 지평선 너머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코끼리들도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를 놓칠 새라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따라가는 아기 코끼리 모습이 정겹다. 코끼리들이 떠난 자리에 어두운 적막이 밀려들었다. 에토샤 국립공원의 ‘흔한’ 저녁 무렵은 이렇게 저물었다.

7 응게피 캠프에서 바라본 오카방고 강 풍경. 당당하고 거침없이 아프리카를 흐른다.

8 트럭킹 여행 중 머무는 캠프사이트에서는 매일 캠프 파이어를 한다.

9 오카방고 강 옆 롯지 풍경

며칠간의 캠핑 끝에 롯지에서 한번 자보기로 했다. 편안한 침대에서 자면서 피로도 좀 회복하고 먼지도 털어낼 생각이었다. 오카방고 델타 강가에 있는 ‘응게피(Ngepi)’라는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프리카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롯지도 그 이름 스타일 그대로였다. 객실에 방 벽이 아예 없고 그저 갈대 발을 둘러놓았다. 저녁 10시부터는 아예 전기도 안 들어온다. 지금까지 거쳐온 캠프에 있던 호텔식 롯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심란한 마음에 컴플레인을 하려고 했더니 우리 차를 운전하는 마크가 리셉션 뒤편을 가리킨다. ‘불평 쪽지를 넣을 수 있는 박스는 강에 있는데 악어 조심해라’라는 문구가 당당하게 걸려 있다. 씩 웃음이 나왔다. 그래, 아프리카에 왔는데 이것도 좋은 경험이겠지.


다행히 침대는 푹신했고 모기장은 튼튼했다. 마음을 여유 있게 가지니 잠이 절로 왔다. 신선한 공기 속에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새소리와 함께 깨어나 보니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오카방고 강물이 방 아래에서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맞았던 최고의 아침이었다.

12 짐바브웨와 잠비아 국경을 장쾌하게 가르며 흐르는 빅토리아 폭포 모습.

10 캠프사이트에 머무는 트럭킹 차량.

11 바오밥 나무. 나미비아에서 보츠와나로 들어서는 국경에서 만났다.

‘천둥소리 나는 연기’ 떠있는 빅토리아 폭포 강렬함에 말을 잊어


나미비아 국경을 지나 보츠와나로 접어들었다. 초베 국립공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초베강에서 하는 석양 보트 사파리 투어를 할 차례였다. 60여 명을 태운 큰 보트가 강가를 따라 내려가며 동물을 찾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나 싶더니 물을 먹으러 강변에 내려온 사자 무리가 보였다. 보트 소리에 놀랐는지 암사자들은 자리를 피하는데 숫사자는 그대로 여유 있게 물을 마시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우리 쪽을 쳐다보는데 그 눈초리가 위풍 당당하다. 마치 자신이 이곳의 왕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것처럼.


하마는 그 큰 덩치만큼 위험한 동물이다. 작은 배 정도는 손쉽게 뒤집어 버린다. 그래서 오카방고 델타에서 ‘모코로(Mokoro·원주민 통나무배)’ 투어를 할 때는 멀리서 숨죽이며 바라보기만 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늪지도 갈 수 있고 안정을 잘 유지하도록 특별히 제작된 사파리 보트는 하마가 무서워할 정도로 충분히 크고 위협적이었다. 물 위로 떠올랐다 숨었다를 반복하면서 자리를 옮기는 하마 떼를 쫓아다니면서 마음껏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덕분에 왠지 슬퍼 보이는 하마의 큰 눈동자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그 원망하는 듯한 눈동자 너머 초베강 위로 원시의 석양이 불타올랐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빅토리아 폭포를 향했다.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에 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폭포다. 나이아가라, 이과수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힌다. 폭포 근처에는 항상 물안개가 떠 있고 원주민들은 이것을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라고 불렀단다. 숲 속을 거쳐 다가가는데 그 이름답게 천둥 같은 소리가 먼저 귀를 때렸다. 시야가 트이면서 폭포의 모습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굉장하다! 이렇게 웅장하고 큰 폭포를 본 적이 없다. 깊게 떨어진 물은 얼마나 힘차게 떨어졌는지 그 반동으로 다시 이슬비가 되어 거꾸로 솟구치고 있었다. 폭포 물줄기 위로 선명하게 떠오른 무지개가 우리의 마지막 일정을 축하라도 해주듯 환영의 아치를 만들어줬다.


아름답다. 그리고 장엄하다. 아프리카 대륙이 가진 원시의 힘과 역동이 느껴졌다. 그 힘이 너무 강렬해서 말을 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 아프리카가 바로 이런 곳이었구나. 태초에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아직도 박제되지 않은 야생의 강렬한 힘이 살아 숨쉬는 곳. 그래서 규격화되고 길들여져야 하는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끌린다. 그리고, 고생을 사서 하면서도 그 대지의 품에 안겨 여행을 하고 다시 살아갈 야성의 힘을 얻는 모양이다. 아프리카, 그 원초적 매력에 푹 빠졌다. ●


남아공·나미비아·보츠와나·짐바브웨·잠비아 글·사진 주영욱 여행칼럼니스트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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