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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창의적인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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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24면

ⓒ Caroline Ablain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개념의 무용 경연대회 ‘댄스 엘라지’(6월 11~12일 LG아트센터, 18~19일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가 온다. ‘현대무용의 메카’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과 프랑스 렌의 국립무용센터 뮤제 드 라 당스(Musee de la Danse)가 2010년 함께 기획하고 에르메스 재단 후원으로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열리던 대회가 올해 처음으로 경연장을 아시아까지 넓혀 서울의 LG아트센터와 함께 진행한다.


‘댄스 엘라지’는 무용 대회를 단순한 춤과 안무 실력의 경연을 넘어 21세기형 공연예술 경연으로 확장하기 위해 탄생했다. 지금까지 약 70개국 1500여 팀이 지원했고, 올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팀의 참가가 부쩍 늘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500팀 중 비디오 예심을 통과한 34개팀이 서울과 파리에서 17팀씩 각각 본선과 결선을 거쳐 3팀씩 최종 선발된다. ‘댄스 엘라지’의 공동 창립자이자 뮤제 드 라 당스의 예술감독인 보리스 샤마즈(43)를 e메일로 만났다.

2009년 보리스 샤마즈가 ‘춤을 위한 박물관’을 모토로 설립한 뮤제 드 라 당스는 장르불문 새로운 형식의 공연예술 작품을 만들어 다양한 장소에서 선보이는 무용센터다. ‘댄스 엘라지’도 이런 춤에 대한 자유로운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별다른 제약이 없다. ‘10분 안에 3명 이상의 공연자를 창의적인 무대에 올릴 것’이 단 하나의 조건. 테크닉이 아니라 구성력과 창의성이 탁월한 예술가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샤마즈는 “현대 무용수들은 복원·재현·도용·참조·인용 등에는 관심이 많지만 막상 창의성 발휘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좀 다른 형태로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했다”며 탄생배경을 설명했다.

댄스 엘라지 2014 경연 중에서

테아트르 드 라 빌과 함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특정 예술장르를 만들어내는 역사적인 ‘포맷’에 관심이 많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대부분의 안무가들은 저 유명한 바뇰레 콩쿠르를 거쳤다. 이 오래된 경연의 형식을 다시 취하면서 테아트르 드 라 빌이라는 신성한 무대를 많은 참가자들에게 개방하고 공유하는 형태가 굉장히 도전적이라고 생각했다. 댄스 엘라지의 경연 방식은 뭔가 특이하고 예상치 못 했던 것에 대해 문을 열어주고, 또 이런 무대를 꿈꿔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좋은 방법이다.”


한국을 또 하나의 경연지역으로 택한 이유는. “‘엘라지(Elargie)’는 ‘확장(enlargement)’이라는 뜻이다. 대회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늘 있었다. 영화제 같은 형태로 만든다거나 대규모 시각 예술 전시회인 모뉴멘타(Monumenta)처럼. 하지만 이 경연을 한국과 함께 주최하자는 아이디어는 테아트르 드 라 빌로부터 나왔다.”


테아트르 드 라빌의 에마뉴엘 드마르씨 모타 예술감독도 ‘댄스 엘라지’의 콘셉트 확장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첫 대회 후 곧장 해외에서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는 차별점이 없기 때문에 다른 대륙에서 물색하던 중 한국의 LG아트센터를 낙점하게 됐단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이 가진 위상과 동등한 위치의 파트너를 찾아야 했다. 아티스트들이 공연하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곳이면서 무용 공연에 대한 역사가 있고, 혁신에 대한 열망으로 세계적인 공연 단체를 초청하는 공연장이어야 했다”는 것이 모타의 말이다. 그는 “올해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많은 참가자들이 나왔기에 이미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많이 발굴하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6월 11~12일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되는 경연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LG아트센터 홈페이지(www.lgart.com)를 통해 미리 신청하면 된다. 출품작 필름 상영과 관객이 뽑은 관객상 수여, 관객 대상 행운권 추첨 등 다채롭게 진행된다.

안은미·이불·장영규도 심사위원 샤마즈는 “댄스 엘라지는 단순히 순위를 매기는 대회가 아니다. 진정한 아티스트를 발굴하기 위해 경연의 형식을 빌린 것일 뿐”이라며 “발굴된 아티스트 중 다수가 세계의 더 많은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며 더욱 창조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댄스 엘라지’는 다양한 분야의 잠재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예술적 교류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경쟁보다는 창조와 교류의 장이다.


이번 LG아트센터에도 벨기에·네덜란드·독일·프랑스·대만·모리셔스 출신의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아티스트들이 모여든다. 한국에서는 총 77개 지원팀 중 김보람·이선태·임샛별·윤나라·허성임 등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 포함된 1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10팀은 한국에서, 2팀은 프랑스에서 결선까지 치른다.


장르 불문이라지만 한국인 중에는 주로 유명 무용수들이 본선에 올랐다. “댄스 엘라지는 아마추어 무용수, 학생, 그리고 여기서 첫 발을 내딛는 안무가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유명 예술가를 배제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아시아의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이 새로운 개념의 행사에 열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 매우 흥분된다.”

지난 경연을 통해 세계무대로 진출한 아티스트가 있나. 그들의 활동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올해 심사위원을 맡은 파울라 로졸렌은 2014년 수상자다. 그의 작품 ‘에어로빅스(Aerobics)’는 독일·벨기에·스위스·프랑스·세르비아 등에서 지원을 받아 공연됐다. 그밖에 시몽 탕구이, 멜라니 페리에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수상자가 많다. 수상자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프로젝트도 전폭 지원한다. 뮤제 드 라 당스는 수상자 및 파이널리스트들의 다양한 작품들로 ‘댄스 엘라지의 밤’을 열고, 그중 일부는 뮤제 드 라 당스의 레지던스 아티스트가 된다. 테아트르 드 라 빌도 매년 댄스 엘라지 아티스트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작품을 성숙시키고 기획자를 만나는 좋은 기회다.”


심사위원 면면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안무가 마틸드 모니에,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영화감독 클레르 드니, 비주얼 아티스트 히만 청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심사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안무가 안은미·설치미술가 이불·작곡가 장영규 등 한국인 3명을 포함해 총 7명의 심사위원이 선정됐다.


다양한 분야의 심사위원은 어떻게 정하나. “심사 자체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중요하다. 우리는 큐레이터나 평론가가 아니라 예술가들이 다른 예술가들을 바라봐주길 원한다. 나는 한국 안무가들을 잘 모른다. 그보다 위대한 시각 예술가이자 퍼포머인 김성환, 백남준에 관해 더 잘 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댄스 엘라지가 한국에 필요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한국인들을 심사위원으로 제안한 건 테아트르 드 라 빌이었다. 올해 ‘코리아 시즌’에 안은미의 ‘땐스 3부작’을 초청했고, 이불의 작품세계도 잘 알고 있다는 모타는 “심사위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양한 장르에서 강한 개성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라며 “이는 자신의 영역을 넘어 예술 전반적으로 뚜렷한 관점을 가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댄스 엘라지는 예술가들로만 심사위원이 구성된 유일한 경연대회”라며 “그들이 쉽게 합의에 이르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많은 논의가 오간다. 이틀 동안 오로지 예술에 대해서만 논의할 수 있기에 심사위원들에게도 환상적인 기회다.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논의와 토론이 많을수록 좋다”고 덧붙였다.


올해 참여한 아시아 팀들에 대한 인상은. “전문적 기량은 놀라울 정도인데, 내가 무용 작품에서 기대하는 것은 ‘자유로움’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댄스 엘라지’는 인지도를 얻기 위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무언가’를 해보는 곳이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예상되는 것들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관객을 궁금하게 만드는 창조적인 행위를 해보는 곳이다. 실패조차 미지의 길로 이끌어 갈 테니, 주저하지 말기 바란다.”


장르 초월 융복합 공연에 한국도 관심이 많지만 완성도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학제적인(interdisciplinary) 존재다. 프랑스 무용수인 내가 지금 영어로 글을 쓰고 있듯, 우리는 모두 여러 분야에 걸쳐있고 복합적이다. 춤은 내가 무언가 쓸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것이며, 정신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여러 분야를 걸치는 것은 기술을 축소시킬 위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무용에 소질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용 공연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민주적인 곳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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