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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빈약한 한국 서점의 중국어 원서 섹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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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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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나는 지난주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형 서점을 찾았다. 정치·경제 문제에 대한 중국어 원서가 어떤 게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중국 문화대혁명 50주년인 5월 16일 이후 중국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이 남긴 유산(legacy)에 대해 뜨거운 토론이 다양한 각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인터넷 기반 토론을 넘어서는 보다 구체적인 단행본 문헌이 필요했다.

중국 내 토론이 한국에 직접 영향
중국 알려면 중국어로 된 책 봐야
문화 교류 확대가 무역보다 중요
차세대 지도자에게 중국어는 필수

그 대형 서점은 최근 외국서적부를 리모델링했다. 몇 달 전에 나는 중국어 원서 섹션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굿 뉴스였다. 사실 중국어를 읽을 수 있는 한국인 수가 꽤 된다. 또 많은 한국인이 현대 중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서울에 사는 중국인 인구도 늘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교환학생, 장기 체류자도 많다.

하지만 서점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어처구니없었다. 내가 이제까지 목격한 도서 컬렉션 중 최악이었다. 중국어 책 섹션은 일본 원서 섹션의 한 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중국어 섹션이라는 안내 표지판도 없었다. 점원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중국어 섹션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중국어 책이 놓인 책꽂이 선반은 달랑 7개였다. 그중 두 개를 중국어 학습 교과서가 차지했다.

나머지 5개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JK 롤링 같은 유명 작가가 쓴 책의 중국어 번역판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기, 그리고 중문판 성경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입문서·실용서도 눈에 띄었다.

중국 소설은 단 한 권도 없었다. 현대 중국의 사회·정치·경제·문화를 다루는 최근에 나온 책 또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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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에 꽂힌 책만으로 판단한다면 요즘 중국에서 나오는 책들 중에서 흥미를 끌 만한 책은 없다. 그러한 인상은 현실을 심하게 오도한다. 중국의 작가들과 지성인들은 현대 중국 문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다루는 진지한 책들을 줄기차게 출간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CASS)만 해도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분량의 연구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그중 많은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중국사회과학원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 없다.

현대 중국 책을 무시하거나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시장의 힘이나 논리와도 동떨어졌다. 많은 한국인이 중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한국의 여론 주도층 인사들이 높은 지적 수준에서 중국에 접근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나라 이상의 나라다.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중국인이다. 중국의 지적인 다양성과 점증하는 문화적인 역동성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은 중국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으며 보다 면밀하게 중국의 추세를 관찰해야 한다.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들은 중국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신문을 읽거나 중국어로 편지를 쓰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한국에 필요한 것은 ‘중국’ 전문가뿐만 아니라 쓰촨(四川)성·광둥(廣東)성·상하이(上海)·우한(武漢) 전문가다. 이들 성(省)과 도시는 한국에 세계의 그 어떤 다른 나라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정부 부처나 기업은 특정 중국 지역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면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이 중국의 지적·문화적 발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내가 이미 목격한 것은 많은 한국인이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경제 토론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현실이다. 중국 스스로가 생각하는 세계 속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해가 없다.

중국 국내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의 주요 저자들로부터 차단된다면 한국인들은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중국의 여러 세력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게 된다. 두 나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놓고 보면 결코 ‘모르는 게 약(藥)’이 될 수는 없다.

한국인들이 중국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이 하는 일에 항상 동의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중국이 엄청난 문제들을 끌어안고 있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한다. 한국이 중국과 협업하고 중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첫걸음은 인식의 전환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교역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지적·문화적 교류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투명성을 제고하고, 공해를 줄이고, 이미 엄청난 규모이긴 하지만 중국이 세계와 교류를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우선 중국에 대해 이해하고 중국의 사안들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달리 길이 없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