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박사 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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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역만리, 하와이의 호놀룰루에 이승만 박사의 동상이 세워진다는 소식은 새삼 우리의 깊은 망각을 일깨워준다.
국내에도 이 박사의 동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하대와 배재고의 교정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동상은 연고와 사사로운 추앙의 모뉴먼트일 뿐이다.
어느 사회나 모뉴먼트가 드문 사회는 그 사회의 에스프리마저 메마른 것같아 여간 삭막하지 않다. 누구나 구미를 여행하면서 제일 먼저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은 여기 저기서 볼 수 있는 모뉴먼트들이다.
영웅호걸들만이 아니다.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있어야 할만한 자리에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인물이 유명해서 동상이 있다기보다는 동상이 있음으로 해서 그 유명이 보존되고 더 존경을 받는것 같은 인상마저 든다.
그런 동상일수록 하늘로 치솟아 혼자 우뚝서 있는 모양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훨씬 친근한 모양으로 사람들 가까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시청 앞엔 「안데르센」의 동상이 앉은 자세로 세워져 있는데, 소년·소녀들은 그 동상을 오르내리며 코도 만져보고 손도 잡아보곤 한다. 「안데르센」은 사후 백년이 지나도록 시민 곁에 살아 있었다.
우리나라에 인물 모뉴먼트가 드문것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시류는 인물을 인물인 채로 남아 있게 하지 않았다.
해방과 더불어 친일논쟁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우냐, 좌냐로 역시 많은 인재들을 현실의 무대 밖으로 밀어냈다. 그 후의 잦은 정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재박명」은 수명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영」은 짧고 「욕」은 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월단평인 것 같다.
이승만박사에 대한 평가는 긴 시간을 두고 사가들이 내릴 일이지만, 그가 우리나라 근세사에 이바지한 인물이며, 건국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평가 이전의 역사적 기록이다.
그런 인물의 동상에 인색한 우리의 세정은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때늦게 서울시는 과천 대공원에 역대 대통령·부통령의 동상을 세울 계획을 밝힌 일이 있었다. 어느 하세월에나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건국 37년 연대를 맞는 우리는 대범과 의연의 기품을 가질 만도 하다. 바다건너 멀리 낯선 고장에 이 박사의 동상이 먼저 세워진다는 얘기는 어딘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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