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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친정마저…미 국무부 “힐러리, e메일 규정 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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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의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유세장.

장관 재임 중 e메일 자료 미제출
감사 보고서에 구체적 사례 명시
NYT “유권자들 그녀 신뢰 않는다”
트럼프 “샌더스와 대결할 수도”

트럼프가 오른손 둘째 손가락을 위로 향하는 특유의 제스처를 쓰며 “‘부정직한(crooked) 힐러리(클린턴)’에게 오늘 안 좋은 소식이 있었다”고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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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미 국무부가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재임 중)기록관리에 있어 국무부 규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득의 만만한 표정으로 “난 그녀와 경쟁하기를 원한다. 근데 그렇게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미치광이인 버니 샌더스와 (경쟁)해야 할 수 있다. 아니 (클린턴의 낙마로) 조 바이든 부통령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끼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이 ‘e메일 스캔들’로 발목이 잡혀 대선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마음껏 조롱한 것이다.

실제 국무부 감사실의 이날 보고서는 메가톤급 충격을 몰고 왔다.

그 동안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의 핵심은 국무장관 재임 중(2009.1~2013.2) 국무부의 공식 메일 외에 사설 e메일 서버를 이용해 국가기밀 등을 다룬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그런데 이날 국무부 감사실의 보고서는 그와는 별개로 “국무부의 기록관리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또 다른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다. 한마디로 ‘e메일 더블 펀치’를 맞은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유권자들은 이제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타임스도 “트럼프가 ‘부정직한 힐러리’라 공격하기 더욱 수월해졌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 감사관실이 미 의회에 제출한 83쪽 분량 보고서에서 새롭게 드러난 내용은 크게 세 가지.

먼저 관련 자료 제출 누락. 클린턴은 2013년 2월 국무부를 떠나기 전에 업무 관련 e메일 기록을 모두 제출해야 하는데 2년이 거의 다 된 2014년 12월에야 재임 중 사용한 3만개 정도의 e메일을 제출했다.

게다가 다른 3만개의 e메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며 지워버렸다. 이 자체도 국무부 규정을 위반한 것인데다 클린턴이 최측근인 후마 에버딘 전 수행실장과 “(개인 e메일계정 대신) 정부 e메일 계정을 만들어야 한다”(에버딘), “별개의 주소나 디바이스(기기)를 만들자. 개인적 메일이 노출되는 걸 원치 않는다”(클린턴)는 메일 교환이 있었는데, 이 메일이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클린턴 측은 이 이유에 대해 답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클린턴의 e메일 서버에 해킹시도가 있었다는 점. 2011년 1월 클린턴의 IT담당자가 “실패하긴 했지만 누군가 우리를 해킹하려 했다”고 털어놓았고, 같은 날 “또 (해킹) 공격을 당해 서버를 정지했다”는 말까지 했다. 2011년의 다른 시기에도 “누군가 그녀의 e메일을 해킹하고 있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인 서버에 대한 국무부 직원들의 우려에 국무부 간부가 “다시는 그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말을 한 것도 이날 공개됐다.

마지막은 클린턴의 ‘조사협조 거부’. 국무부 감사관실은 “보고서 작성을 위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 등 전직뿐 아니라 존 케리 현 장관까지 면담에 응했지만 클린턴만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외교수장이 업무규정을 위반한 것도 모자라 진상조사도 회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미 언론들은 내다봤다. 평소 클린턴에 호의적인 뉴욕타임스도 “‘어떤 e메일 관련 조사에도 협조할 것’이라고 했던 클린턴의 주장에 금이 갔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국무부 보고서뿐 아니라 기밀정보 e메일 유출 관련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 중이란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e메일 논란의 양대 대형 도미노 가운데 하나(국무부 감사)가 넘어졌을 뿐”이라며 “나머지 하나의 도미노인 FBI 수사가 아직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23년 전 ‘화이트워터 게이트’ 담당 측근의 자살사건을 끄집어내 클린턴 부부의 살인 의혹까지 주장하고 나서는 등 클린턴의 ‘비호감 이미지’ 부각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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