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함락 100일] "총 대신 미소" 軍政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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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 초기에 이라크인이나 아랍.이슬람 문화에 무지해 현지 주민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행동을 많이 했던 미군과 미 군정 당국이 갈수록 자세를 낮춰 이라크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잇따른 저항과 미군의 희생을 겪으며 앞으로 살 길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생(相生)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바그다드의 이라크 석유부를 경비하는 미군의 페르디난도 가르시아(22)상병은 출입하는 이라크인들에게 항상 미소를 짓는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는 이라크인들에게도 항상 '서(Sir)'를 말끝에 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위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날씨도 더운데 마음이라도 밝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답을 피했다.

바그다드의 고급 주택가인 알만수르 지역에 배치된 미군 장갑차 주변에는 놀러나온 동네 아이들이 몰린다. 일부 아이들은 장갑차 위에까지 올라가 미군들과 논다. 무시무시한 군장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기도 하고 미군들과 장난도 친다. 미군들도 웃음으로 이들을 맞는다.

전투식량에 물린 미군 병사들은 동네 식당에 들어가 음료수를 마시고 음식을 사간다. 현지인들이 마시는 진하고 단 차를 주문해 마시는 미군 병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들에게 달러를 받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즐거운 표정이다.

미군 지휘부가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라크인들을 대하는 미군의 자세가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이 때문에 '미군이 이라크 소녀들을 강간했다' '남성 미군이 이라크 여성의 몸 수색을 했다' 등 미군을 겨냥한 악소문들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이라크인의 저항은 여전하다. 저격병의 총에 희생되는 미군의 숫자는 줄지 않는다.

때문에 일부 전투지역에선 미군이 이라크 민간인을 상대로 여전히 심한 가택 수색과 몸수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라크에서는 미군과 이라크인 모두 두 얼굴을 하고 있다.

군정 행정처의 국제협력위원회 자문관으로 파견된 한국 외교통상부의 정용칠(49)심의관은 "최근 행정처가 이라크인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심의관은 "이라크 경찰 8천명이 배치되면서 미군과 이라크인들 간의 사소한 충돌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행정처와 13일 발족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가 순조롭게 협력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행정처 고등교육부 수석자문관인 앤드루 애더먼(35)박사도 "수십년간 확립된 이라크의 정치 및 교육기반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며 시간이 더 걸릴 것임을 시인했다.

애더먼 박사는 "지난 5월 16일 발표된 '바트당 해체령'에도 불구하고 후세인 정권의 고위 관계자들이 이라크에 많이 남아 미군에 대한 적대행위를 부추기는 것이 군정의 장애요소"라고 지적했다.

바그다드=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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